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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감의 아내

기사입력 2017-11-16 09:18

IMF로 나라 경제가 바닥일 때 잘 나가던 회사가 적자로 돌아섰다.

2년 먹고 살 것 남겨 놓았지만 매출은 “0”

시간도 생겼으니 공부나 하자는 생각으로 대학원 유통, 마케팅 과정을 신청해 등록허가를 받았다.

인생은 한 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준다더니 내 생의 한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다.

수업이 야간 늦게 끝나기에 서로 바삐 차로 귀가들 하는데 캄캄한 길을 걸어가는 분이 계셔 방향을 물었더니 조금만 돌아가면 되는 코스여서 함께 가자했다.

그 다음부터 수업시간이면 자연히 옆 자리에 앉아 함께 수업을 받았다.

수강생 인적사항이 나왔기에 훑어보니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고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나 날짜만 12일 늦은 사람이 있기에 새삼 인사하고 늘 셋이서 몰려 앉아 수업을 들었다.

개인사업 하는 동갑내기 사려 깊은 친구.

나이 차이는 있어도 생각하는 바가 총명하고 주관이 남다른 여성.

골초였던 남편 사별하고 비가 오나 바람 부나 비석 옆 상석에 징징대며 담배 피어 올려주기, 술 따라놓았다 뿌려주기 6개월을 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골초 주당에 입문했단다.

할 일없어 사별한 남편 잊으려 뭐라도 하려다 대학원 등록하고 우울증 생겨 늘 자살유혹에 시달려 낯에 문방구를 시작했다.

남편 친구 분이 큰 회사 계열사중 한 곳에 문방구 납품을 시켜줬는데 화물차 운전을 할 줄 몰라 1톤 차를 새벽서부터 연습하기 시작해 이틀 만에 거리로 나가기 시작 문방구 사업을 넓혔다.

또 다른 남편 친구의 주선으로 초창기 하이마트에 잡화 납품 시작 문방구화 함께 수직 고속 성장.

그러나 잠시라도 시간이 비면 우울증으로 여전히 자살 유혹이 항상 내재되어있었다.

더구나 여자 혼자라고 침 바르려는 수컷들이 주위에 드글드글 하다 보니 남편 생각이 더 나서 잠시도 쉬지 않고 일했다.

수업 끝나고 집에 도착까지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보니 많은 걸 알게 되었고 늘 셋이 붙어 다녔는데 한 친구가 키가 작은 편이라 큰 영감, 작은 영감이라 불러주던 친구가 본사를 수원 영통에 지어 승승장구 잘 나가다 보니 시간이 없어 만남이 뜸해졌지만 너무 둔하지 않게 함께 점심도 하곤 했다.

어느 날 점심 함께 하려는데 한 남자를 데려와 재혼할 사람이라며 큰 영감 작은 영감에게 첫선 뵈는 것이라 한다.

혼례는 신랑 될 분의 집에서 했다.

냇물이 흐르고 넓은 잔디밭에 갤러리동이 있고, 작업동과 넓은 집이 함께 있는 예술인 촌 중 독립된 한쪽이었다.

그 후 사업이 계속 번창해 대전에 지사도 내며 얼굴 볼 새 없이 SNS로 안부 묻기만 몇 해 하다 보니 많이 뜸해졌는데 지난 해 갑자기 집에서 만나자기에 작은 영감과 갔더니 그 동안 위암수술을 했다며 안색이 덜 좋았다.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선지 자꾸 짐을 꾸려야한다는 강박증이 생기네요.

집안 정리 해두고 길 떠나는 아낙처럼

언제라도 주변이 구질스럽지 말아야겠다는 강박

그렇다고 죽을 지경으로 아픈 건 아니고요.

그냥 마음이 그렇군요.

작은 영감도 잘 지내시죠?”

그제 새벽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늘 당당하고, 자존심 강하며, 옷 잘 입고, 운전을 잘해 파리다카르 랠리 선수로 참여해 보는 게 버킷 리스트에 들어있는, 옹골차고 당당한 여자.

화장 끼 전혀 없는 얼굴에, 가끔 툭 튀어나오는 엉뚱함이 매력적인 친구,

그가 아프다한다.

깜짝 놀라 두 영감이 들렸다.

남편 보낸 것에서 시작하여 욱일승천(旭日昇天) 기업을 성대하게 이뤘지만 하고많은 것 중에 하필이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줄이야.

굴곡의 연속이 삶이라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마무리를 강요당하다니.

돌아오는 내내 서로 할 말을 잃었다.

반쪽 아내와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두 영감의 아내가 점점 방전되는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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