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취미자산가들의 향연, 두 글자로 본 취미 - 바둑
취미(趣味)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10대 때부터 지금 60대에 이르기까지 바둑을 취미로 삼고 살아왔다.
바둑을 두는 환경은 인터넷이 들어오면서 급격하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상대할 사람이 있어야 하고 도구로 바둑판과 바둑돌이 있어야 했다. 지금은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바둑 둘 상대가 사방 천지에 널려 있다. 심지어 바다 건너 일본 선수 또는 중국 선수하고도 둔다. 말이 필요 없기 때문에 외국어 능력도 필요 없다. 바둑돌과 바둑판은 컴퓨터 화면에 다 있다. 이기고 지는 계가(計家)도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으로 계산된다. 다시 돌아보는 복기는 물론 전적과 과거 승패 기록도 고스란히 보관된다.
바둑 취미의 장점은 돈이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치매에 걸리지 않고 천수를 누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역사상 최초의 바둑책인 <기지(碁旨)>를 쓴 반고(班固)는 “우주 대자연의 음양원리를 원용한 바둑은 상대성을 추구하는 놀이다. 이를 즐기며 체득하는 동안 인간은 우주원리에 순응하는 법을 알게 되고 그로서 수명을 늘려 장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필자는 해결책이 없어 짜증이 날 때나 엉뚱하게 오해를 받아 속이 상해 있을 때 바둑을 둔다. 또 원인 모르게 기분이 울적해져 혼자 있고 싶을 때도 바둑이 생각나고 구미가 당긴다. 혼자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 바둑 방을 두드리면 비슷한 기력(碁力)의 상대가 덤벼든다. 이제부터 무아지경에 빠지는 바둑판에서 두뇌전쟁이 시작된다.
바둑은 흑백의 돌이 목숨을 걸고 서로 많은 집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다. 싸움판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도록 몰입을 강요한다. 조금 전까지 우울하던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물고 물리고 죽고 죽이는 바둑돌의 싸움에 정신은 통일되고 손에는 땀이 난다. 바둑이 끝나면 피곤하지만 마음은 평온을 되찾는다. 이런저런 일로 울적했던 기분들이 리셋되어 평온해진다. 잡념들이 사라져 다른 일을 해도 손에 잡힌다. 이 맛에 바둑을 둔다. 글을 쓰다가 콱 막힐 때, 기계를 수리하다가 고쳐지지 않을 때, 하던 일을 멈추고 인터넷 바둑을 둔다. 바둑을 두면 머리가 깨끗하게 포맷된다.
“바둑돌 죽지 사람 죽나”
필자는 고등학교 때 형님으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형님의 기력도 보잘것없는 6~7급의 수준이었지만 초보자인 필자를 골려주기 위해 툭하면 바둑을 두자고 졸랐다. 형님을 꺾기 위해 바둑이론을 공부하고 바둑 월간잡지도 뒤적였다. 군대에 입대할 때는 3급 정도의 기력이 되어 일병이 하늘같은 대대장인 육군 중령과 바둑을 뒀다. 가끔은 대대장 관사에 호출되어갔다. 대대장과 바둑을 두는 필자를 고참 들은 못마땅해 했지만 감히 때리지는 못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바둑을 좋아하는 상사를 만났다. 그런데 이분은 너무 승부욕이 강해 반칙을 하곤 했다. 불리하면 바둑돌을 놓을 때 소매로 이미 놓인 바둑돌의 위치를 슬그머니 밀어서 이동시켰다. 그리하여 살아 있는 내 말을 죽게도 만들고 죽어 있는 상사의 바둑돌은 살리기도 했다. 나이와 직급이 있어서 항의하거나 싸울 수도 없었다. 그때 필자의 명언이 탄생했다. 바로 “바둑돌 죽지 사람 죽나”였다. 감사 실장하고도 바둑을 두면서 불합리한 제도로 억울한 처벌 위기에 있는 동료 직원들을 많이 변호해줬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장기판의 말은 차, 포, 마처럼 계급 같은 중량감이 있고 가는 길도 다르다. 하지만 바둑은 평등하여 361점 어디에도 비어 있으면 놓을 수가 있다. 하지만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정수도 되고 꼼수도 되며 군사의 매복처럼 암수도 되고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충수도 된다. 아무리 큰 대마라도 두 집을 못 지으면 미생이 되고 두 집을 지어야 완생이 된다. 적을 공격하기 전에 내 말의 안위를 먼저 살펴야 한다. 혼자 떠도는 말은 죽기 십상이다. 아군끼리 연락 체계를 유지해야 안전하고 적을 공격할 때 힘을 발휘한다. 인생도 똑같다.
바둑에 임하는 자세와 작전 요령을 밝히는 열 가지 요령을 위기십결(圍棋十訣)이라고 하는데 모두가 인생살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주옥같은 말이다. 그 첫 번째가 부득탐승(不得貪勝)으로 승리를 탐하면 이길 수가 없다고 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눈앞의 사리사욕을 탐하다 감옥에 가는 사람도 있다. 열 번째가 세고취화(勢孤取和)로 고립되었을 때는 화평을 취하라는 말이다. 인생도 더불어 살아야지 왕따로는 결코 행복하게 살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이런 말은 마음속에 크게 간직해야 할 명언 중에 명언이다.
반드시 상대할 사람이 눈앞에 있어야 대국이 가능했던 예전에는 수많은 동호회가 있었지만 요즘은 인터넷 바둑에 접속만 하면 되므로 동호회는 거의 사라졌다. 직장에서도 바로 옆 사람하고 오프라인에서 두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바둑을 둔다. 그 많던 바둑판과 바둑돌도 사라지고 도심의 기원도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었다.
바둑을 잘 두려면 바둑교실, 바둑 서적, 바둑전문채널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바둑으로 생업을 유지하려는 프로가 아니라면 너무 실력 향상에 머리를 싸맬 필요는 없다. 바둑 실력이 하수라면 비슷한 하수끼리 두면서 즐기면 된다. 조급해하거나 승패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고 즐겁게 바둑을 두면 된다.
취미는 중독을 경계해야 한다. 도박, 마약, 스포츠, 섹스, 음주와 같이 바둑도 중독성이 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는 말처럼 취미에 너무 탐닉하면 건강을 해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밤을 새면서 바둑을 두거나 돈을 걸고 내기바둑을 두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