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잘 때 모든 등은 끄지만, TV는 틀어 놓고 자는 날이 많다. 그러면 잠이 편안히 온다. TV를 끄고 “이제부터 잔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잠이 안 온다. 그렇다고 불면증은 아니다. 불면증은 잠은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오니 괴로운 증상이다. 불면증이더라도 다음날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영화나 한 편 보고 늦게 일어나도 그만이다.
TV는 당구 방송을 주로 본다. 해설하는 사람 목소리만 들리는데, 들어도 그만이고 안 들어도 그만이다. 경기를 중계하는 것이므로 봐도 그만이고 안 봐도 그만이다.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볼륨을 약하게 틀어 놓고 있으면 자장가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작년에 TV가 고장 나서 애프터서비스를 받았는데 장시간 TV를 틀어 놓으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백화점 진열 TV처럼 하루 종일 틀어도 문제없도록 고쳐 달라고 했더니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다.
액선 영화나 호러 영화는 조용하다가도 간간히 볼륨이 커진다. 그래서 잘 때는 안 본다. 소리가 커지면 자다가 중간에 깰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호러 영화는 꿈자리 사나울까봐 피하는 편이다.
이렇게 일정한 음폭을 가지고 있어 귀에 쉽게 익숙해지는 소음을 ‘백색소음’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모든 빛이 다 합쳐지면 백색을 띤다고 한다. 거기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카페에서 사람들이 속삭이는 대화 소리도 백색소음이다. 자연에서 파도 소리나 빗소리, 폭포 소리 등도 소리는 나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는 소음이라 백색 소음에 속한다는 것이다. 파도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면 잠이 오는 것에 착안하여 파도소리를 녹음하여 팔기도 한다는 것이다.
필자세대에서는 공부할 때 작은 소음도 방해 되었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한다. 그래야 집중이 더 잘 된다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음악소리를 백색 소음으로 간주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필자가 TV를 틀어 놓고 자는 습관이 생긴 후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강소이 시인의 ‘TV 베개’ 라는 시가 있다. 전철 스크린 도어에서 처음 접했다.
“TV를 보다 잠드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TV를 켠 채 잠을 청하는 것이다
사람 소리 끌어다가 이불로 덮고
외로움이라는 낱말 데려와 함께 잠든다“
-중략-
이 시를 읽고 필자가 TV를 켜고 잠이 드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소리를 끌어다가 이불로 덮고 자고자 한 것이다. 외로움을 특별히 느끼지는 않지만, 부인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아직 소음에 민감한 편이다. 영화관이나 음악회에 갔을 때 다른 손님들의 잡담 소리나 사탕을 까먹는 소리 등이 몹시 거슬린다. 술집이나 음식점에 갔을 때 다른 손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으면 신경이 곤두선다. 더 나이가 들으면 청력이 약해져서 괜찮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