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고 지난 해 읽었던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다시 꺼내들었다. 서른여섯 살 젊은 의사가 암이라는 거대한 암초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의연하게 자신의 삶을 걸어갔는지를 보여준 책이다.
외과의사로서 그는 많은 죽음을 보았고 가슴 아파했다. 생사를 가르는 현장에서 의사의 책무는 무엇인지, 무엇이 의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지 파악하려 애썼다. 또한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의 연민을 풀어주려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가 암 진단을 받고 난 후,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에서 죽음 앞에 선 환자가 되었다.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은 환자를 치료할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대면하는 일이 이토록 혼란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죽음을 용감하게 마주하고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생존을 향한 끝없는 분투를 통해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한 것이다. 암진단을 받고도 레지던트 생활을 마쳤고, 체외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고 길렀다. 또한 집필에 필요한 정신력을 유지하기 위해 끝까지 애썼다. 맥없이 죽어가는 모습 대신 자신의 인생을 끝까지 아름답게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폴 칼라니티가 감동을 주는 건 이런 삶이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간이 걸어간 빛나는 길이라는 점 때문이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생각해 보라’는 주치의의 말에 폴은 ‘자신에게 석 달의 시간이 남아 있으면 가족과 시간을 보낼 것이고, 1년이 남아있다면 글을 쓰고싶고, 10년이 남았으면 병원으로 돌아가 환자를 치료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일은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됐다. 평상시에 소중하다고 느껴졌던 일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사소한 일이 되버리고, 사소해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권사님을 다시 만나면 그녀의 인생에서 의미있는 일이 무엇인지 얘기해 봐야겠다. 암과 싸우고 있는 그녀는 나보다는 훨씬 단순한 것에 열정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