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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도전

기사입력 2017-07-05 14:08

몇 년 전 갑자기 기타가 배우고 싶어졌다. 오래전 학창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었다. 학창시절 엠티나 야유회를 가면 누군가 꼭 기타를 가지고 왔는데 참 부러웠다. 저녁에 캠프화이어를 하면서 같이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다. 필자가 속해있던 써클에서는 ‘밤배’ 라는 제목의 그 당시 유행하던 가요가 써클송처럼 불렸다. ‘검은 빛 바다위에 밤배 저어~ 밤 배... 무섭지도 않은가봐 한없이 흘러 가~네’로 시작되는 가사도 어디론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때 기타 치는 회원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것도 부러웠다. 오랜 세월 생각만 하다가 필자 나이 오십이 넘어서 드디어 기타에 도전하기로 했다. 기타를 배우면 학창시절 그 노래 ‘밤배’부터 치고 싶었다.

생활기타 학원에 들어서는 필자를 보고 아이들이 원장실로 뛰어갔다. 아이들은 원장님 손님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기타학원 원장도 약간 놀란 눈빛이었고 조금은 부담스러운 듯 했다. 아이들이 신기한 구경이 난양 필자 주위를 맴돌았다. 혼자 들어가는 아주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서 도레미파... 연습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메트로놈을 놓고 기타코드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연습을 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했다. 필자의 손가락 기능에 그렇게 문제가 많은 줄 새삼 알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손가락 끝에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서서히 굳은살이 박혀갔다.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 기본적인 기타코드를 몇 개 외우고 아주 쉬운 노래는 악보를 보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 즈음 우리가 속한 어느 단체의 부부모임에서 용문산인근으로 1박2일 야유회를 가게 되었다. 스케줄을 보니 마침 밤 스케줄에 캠프화이어도 들어있었다. 관중 앞에서 기타 연습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기타를 챙기는 필자를 보며 아내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직 코드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기타와 노래가 따로 논다면서 구박을 하던 아내였기 때문에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제발 좀 참으라는 절규에 가까운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악보집과 보면대도 챙겼다.

저녁 늦은 시간 짙은 어둠이 깔린 펜션 마당에는 캠프화이어가 펼쳐졌다. 나이 지긋한 중년부부들이 불 꽃 주위에 둘러앉아 학창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다들 술도 한 잔 씩 해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 때 기타를 들고 나타나는 필자를 보고 모두 환호성을 올렸다. 아내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배운지 두 달 되었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두 달인데 그 정도라면 다들 기타에 도전해야겠다고 덕담을 했다. 그날 서툰 기타연주는 오랜만에 학창시절 분위기를 재연하기에 충분했다. ‘밤배’도 합창했다. 그날 아내는 캠프화이어가 다 끝나고 뒷정리하고 모두 객실로 들어갈 때까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에도 필자의 돈키호테 식 돌발 기타연주는 계속되었고 그 때마다 아내는 주책이라면서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지만 필자의 기타 도전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끈질긴 노력과 설득 끝에 최근 가족 모임에서 아내와 듀엣으로 노래하게 되었다. 그 날 우리는 노사연의 ‘만남’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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