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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부재가 가져다준 선물

기사입력 2017-06-07 09:40

▲아내의 부재는 삶을 재조명해보는 기회를 갖게 만든다(백외섭 동년기자)
▲아내의 부재는 삶을 재조명해보는 기회를 갖게 만든다(백외섭 동년기자)
부부는 오랜 세월 같이 산다. 그러다가 한쪽이 며칠 집을 비우기라도 하면 학창 시절의 방학처럼 큰 해방감을 느낀다. 하지만 필자에게 아내의 부재는 쾌재를 부를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아내가 심한 복통 때문에 병원을 찾은 것은 7년 전 이맘때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소화불량 정도로 생각하고 동네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정도가 점점 심해져 종합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혈압이 급강하하면서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하루 종일 혈압강압제 투여 등 비상조치를 다한 뒤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이후 수년 동안 소화제 복용과 링거주사로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나 그러다 나을 줄 알았던 것이 문제였다. 의사로부터 쓸개가 거의 녹아 없어지고 간까지 크게 손상되었다는 검사결과를 듣고 우리 부부는 크게 놀랐다. 당장 담낭 제거와 간 절제수술을 해야 했다. 아내의 ‘장기 부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올 것이 왔구나.’ 가족의 건강을 더 챙기지 못했던 점이 무엇보다 가슴 아팠다.

준비 과정을 거쳐 매우 어려운 담낭 제거와 간 70% 절제수술을 했다. 아내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들ㆍ딸 가족과 교대로 병실을 지키면서 간병을 했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매우 좋아 아내는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그런데 아내가 집은 비운 동안 집안 살림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당장 식생활이 어려웠다. 식사 준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필자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그동안 아내가 잘 챙겨준 덕분에 한 끼도 거르지 못하는 식습관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데,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전, 은퇴한 친구가 동창 모임에서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은퇴생활을 잘하려면 ‘홀로서기’ 연습이 꼭 필요하다. 고생한 아내에게 휴식시간을 주고, 언젠가 발생할 수 있는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요리가 제일 중요하다.” 마치 당시 은퇴를 앞둔 필자의 처지를 생각해서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진즉부터 아내를 도우면서 가사를 익혔어야 했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병원을 왕복하면서 묻고 배웠다. 밥솥 버튼 누르기에서부터 물 맞추기까지 듣고 외워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아예 수첩을 들고 받아쓰기까지 했다. 전자레인지ㆍ세탁기ㆍ청소기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열심히 익힌 덕분에 지금은 거의 전업주부 수준이 되었지만 말이다. 요즘엔 쓰레기 분리수거도 거의 도맡아 한다. “가사를 엄청 도와주시는 남편이시네요.” 본의 아니게 모범가장으로 칭찬을 받기도 한다.

아내는 치료 경과가 좋아서 퇴원을 했지만 건강은 많이 약화되었다. 나이 탓에 간의 절제 부분도 회복되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진 담낭 때문에 소화기능이 떨어져 음식섭취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은퇴 후 적극적으로 아내의 가사동반자로 나섰다. 자원봉사ㆍ취미활동을 열심히 하는 아내에게 가사부담을 덜어주고 있는 점이 뿌듯하다. 아내의 귀가시간을 묻거나 재촉하는 일도 없어졌다. 아내가 오기만을 멀뚱멀뚱 기다리는 일도 없다. 아내가 며칠간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논의 대상이 아니다. 그럴 때면 오히려 된장찌개를 끓여 놓고 필자의 요리 실력을 음미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돌이켜보니 아내의 와병이 필자에게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다.

아내의 진정한 가사 동반자로 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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