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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크리스마스 단팥죽 사건

기사입력 2016-11-30 10:37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단팥죽 사건(성경애 동년기자)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단팥죽 사건(성경애 동년기자)

필자가 중고생일 때 교회 오빠가 좋아 새벽기도 한 달 개근한 적도 있고 크리스마스 새벽 송을 부르러 다닌 경험도 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다.

크리스마스 때 생긴 일을 말씀드리려 한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 다니시는 어르신들이 새벽 송을 당신 집 앞에서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금은 신림사거리가 번화하지만 그 시절만 해도 한적한 시골 마을의 읍내 번화가만도 못했다. 집들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고 가게도 일찍 문을 닫아 깜깜한 거리를 무리지어 다니면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기분 좋게 삼삼오오 새벽 송을 부르며 다닌 기억이 있다.

그러면 어느 댁에서는 뛰어나와 사탕봉지를 건네주시고, 어느 분은 센베이 과자를 몇 봉지씩에 담아서 주셨다. 당시에는 그런 먹거리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다들 좋아했다. 그중 한 할머니께서는 추우니까 마지막에 꼭 당신 집에 와서 단팥죽을 먹으라고 당부하셨는데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그 할머니 댁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다.

몹시 추운 날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새벽 송을 마치고 발을 동동거리며 할머니 댁으로 몰려갔다. 다들 따뜻한 단팥죽을 먹을 기대 속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가파른 고갯길을 좀 올라가 드디어 할머니 댁에 도착했고 모두에게 한 공기씩의 먹음직스런 단팥죽이 앞에 놓였다.

그런데 한 숟갈을 떠 뜨거운 단팥죽을 입속으로 떠넣는 순간 우리 모두는 요즘 인터넷 용어로 헉~~!!이었다. 단맛도 아닌 정말 희한한 맛이었는데 뱉을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그 순간 할머니가 우리들 표정을 보더니 이렇게 한마디하시는 게 아닌가.

“당원인 줄 알고 소다를 넣었나봐유. 워쩐대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야말로 멘붕 상태였다.

그때 젊은 청년이었던 선생님께서 우링게 무언의 눈빛을 보내셨다.

“그냥 먹어라. 아무 소리 말고.”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눈치는 있었던 우리는 표시 안 내고 웃으면서 “잘 먹겠습니다~”를 외쳤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단팥죽 사건’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어느 날 저녁 밖에서 사들고 온 단팥죽이지만 몸이 아픈 남편에게 고명 얹고 따끈하게 데워주던 날 그날의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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