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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누군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다면

기사입력 2016-11-15 09:36

▲혹시 누군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다면(박미령 동년기자)
▲혹시 누군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다면(박미령 동년기자)
한동안 뜸했는데 오늘 또 마주칠 게 뭐람. 그는 잡상인들의 목청을 흉내 내어 소리친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 불에 떨어집니다.”라고. 일순 지하철 객실 안에 불편한 기운이 감돈다. 크리스천인 나도 애써 창밖을 보며 민망한 시간을 견딘다. 도대체 저 사람은 자신의 외침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하긴 믿지 않는다면 그런 일을 하지도 않을 것이니 나의 의혹은 애초 불필요한 의심일 뿐이다. 양복에 넥타이까지 차려입고 제법 교육도 받았음 직한 초로의 신사가 조금만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쉽게 판단이 서는 어처구니없는 행위를 진지하게 수행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그 배후에 100년 전에나 통했을 전도 방식을 부추긴 어떤 힘을 느낀다.

그런 힘의 존재는 곳곳에서 마주친다. 간혹 방송에서 북한 뉴스를 볼 때면 남한에 대한 욕지거리와 함께 장군님을 칭송하는 일반 시민들의 인터뷰가 등장하곤 하는데 그들의 표정에는 일말의 의심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말이겠지 하는 우리의 일방적인 기대가 사정없이 깨져나간다. 정신을 조정하는 힘은 그렇게 가공스런 것이다.

영화가 현실을 반영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즘 이런 현상들을 소재로 한 영화가 넘쳐난다. 최근에 극장에서 상영되는 <닥터 스트레인지>도 히말라야의 영적 지도자로부터 구원받는 설정이고, <아바타>를 비롯해 많은 SF 판타지물들이 정신의 조종을 다루고 있다. 사실 본래 우리 인간은 너무도 쉽게 타인에게 조종당하는 연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눈 밝은 독자들은 눈치를 채셨겠지만,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어처구니없고 수치스러운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일국의 대통령이 정체를 알지 못하는 여인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다니 말이 안 나온다. 선거 과정에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강인한 정신과 의지의 소유자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정신이 지배당할 정도로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일본의 사회심리학자 오카다 다카시는 <심리 조작의 비밀>이란 책에서 조종당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 말했다.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그것은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자신은 살아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단 의존이 시작되면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실제로는 능력과 매력이 뛰어나더라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믿게 된다.”

오카다 다카시의 설명으로 보면 이런 심리 상태에 빠지는 것이 특별한 인간에게나 일어나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보통 사람 누구나 갑자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쉽게 빠질 수 있는 심리 상태가 아닌가. 지하철에서 지옥을 설파하던 신사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독립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잃는 순간 나락에 떨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친구들과 대통령의 가지가지 소문들을 놓고 수다를 떨다가도 불현듯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나이를 먹을수록 지혜로워져야 하는데. 남 얘기할 때가 아니다. 혹시 우리도 특정 주장이나 이데올로기에 빠져 생각과 정신을 조종당하는 것은 아닌지 모골이 송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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