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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패셔니스트- 나만의 코디법] 모자에 반한 그 남자

기사입력 2016-08-08 18:02

▲필자가 가지고 있는 모자들. (양복희 동년기자)
▲필자가 가지고 있는 모자들. (양복희 동년기자)
필자는 모자 쓰기를 좋아한다. 아주 간단히 멋쟁이로 만들어주는 기막힌 물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래전 모자 때문에 덕을 보기도 했으니 이 코디를 더더욱 버릴 수 없다.

◇용감한 외출

20여 년 전 남편이 이미 미국에 이민 가서 필자가 혼자서 모든 고난을 감당할 때 일이다. 아파트와 모든 것들이 경제 위기 속에 날리고, 손에는 한 푼도 남지 않았다. 당시 유일한 탈출구는 신용대출이었다. 그래서 단골 은행을 찾아갔는데 코웃음만 쳤다. 할 수 없이 다른 은행을 찾아갔다. 오랜 대기 끝에 상담했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영 시원치가 않았다. 확실한 대답을 얻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돌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다음날 오후 전화가 왔다. 전화 속의 목소리는 전혀 않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상대는 대뜸, 필자에게 대출에 관심 있으니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전날 두 번째로 찾아갔던 은행 대부계의 과장이라고 했다. 수상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은 서둘러 은행으로 나갔다. 은행에 갔더니 안쪽에 선비 같은 모습의 대출 과장이 앉아 있었다.

필자를 반갑게 맞이한 그 사람은 차까지 대접하며 친절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상담해주었다. 필자는 솔직하게 모든 상황을 털어놓았고 상대는 아주 자상하게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주었다. 필자는 그 순간에 눈물이 쏟아져 내렸고, 속이 후련해졌다. 설사 대출받지 못한다 해도 후회스럽지 않을 만큼 그 남자는 자상했기 때문이다.

◇진솔한 친구, 은인 사이

그 사람은 “윗분과 상의한 후 결정해야 한다”며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 격려해줬다. 그 직원의 말을 듣고 희망 반, 걱정 반 속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될 즘, 핸드폰으로 또 연락이 왔다. 시원스럽게 한마디로 원하는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무조건 필자라는 인간 하나를 믿고 해주는 대출이니 꼭 갚아 달라고 했다.

필요했던 어려운 대출이 이루어지고, 하루아침에 걱정이 사라졌으니 그 사람은 은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필자는 그 사람에게 먼저 전화를 해 만나자고 했다. 이번에는 필자가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 사람은 쾌히 승낙했고, 필자는 정성껏 준비한 작은 선물과 함께 약속 장소로 나갔다.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필자는 궁금증에 질문했다. 어떻게 그리 쉽게 “아무 조건 없이 해줄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고객님을 모자를 쓴 모습을 처음 본 순간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필자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태연한 모습으로 커피까지 마셨다. 하지만 그 사람과 대화하다 보니 흑심을 품은 남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후엔 속마음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친한 남자 친구가 되었다. 그야말로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순수한 관계였으나 그 후로부터 모든 은행 일은 아주 쉽게 해결되었다.

◇ 아픈 추억

이 일이 있고 얼마후 필자도 미국으로 이민 갔다. 당연히 연락도 못 했다. 그리고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고, 미국에서 잠시 다니러 나왔다. 설레는 마음에 만나기로 한 어느 날, 그 친구는 뼈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들어가 연락을 취한 어느 날에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있었다. 똑똑하고 인간다운 진실했던 친구를 보내고 필자는 한동안 가슴에 큰 구멍인 듯 가슴앓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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