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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 명품 가리기

기사입력 2016-08-08 16:18

▲시아버님 애장품이었던 동양화. (박혜경 동년기자)
▲시아버님 애장품이었던 동양화. (박혜경 동년기자)
일요일 오전 ‘진품 명품‘이라는 남편이 즐겨보는 TV프로가 있다.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했더니 일반 의뢰인들이 옛 물건을 가지고 나와 전문가에게 감정을 받는 내용이다.

작게는 작은 항아리부터 커다란 8폭 병풍이 등장하기도 하고 고서화나 집안의 족보까지 나온다.

많은 의뢰인이 생각하고 나온 금액보다 큰 판정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이 비치면 보는 사람 마음도 덩달아 흐뭇하고 즐거워진다.

대부분 큰 진품은 아니지만 어쩌다 정말 귀한 옛 물건이 나와 깜짝 놀랄만한 액수의 가치를 받는 걸 보며 좋겠다고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그곳에 등장하는 물품을 보고 있으면 예전에 이사하면서 숱하게 버렸던 항아리나 시어머님이 주셨던 고가구인 다과상 등이 생각난다.

유행에 맞지 않는 것 같고 좀 낡아 보인다고 그냥 쓰레기로 처분했던 것이 진품 명품 가리는 프로에 나오는 품목과 너무나 닮아서 혹시 필자가 버린 물건 중 진품은 없었을까 후회가 돼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얼마 전 가슴 설레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우리 집 베란다 구석에 출처는 잘 모르지만 어쩌면 대단한 작품일지도 모르는 산수화 두 점이 있다.

색감이 곱거나 예쁜 서양화가 아닌 동양화 그림은 필자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작은 아파트에 장식하기엔 걸맞지 않아 구석에 보릿자루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에는 뭔가 기대감도 있어서 애물단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1960년대 시아버님이 판사로 재직 중 사형선고를 받은 억울한 사람을 구했더니 감사하다며 보내온 것으로 그 그림을 선물하면서 엄청나게 좋은 작품이라고 했다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동양화를 보는 안목이 없어 그 그림이 얼마나 좋은 작품일지는 모르겠어도 낙관에 찍힌 호가 이름 있는 분이고 폭이 1.5m나 되는 웅장한 산세와 숲의 풍경이어서 어쩌면 나중에 큰 재산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던 건 사실이었다.

시아버님이 좋은 작품이라고 하셨다며 잘 간직하라고 분가하던 날 시어머님이 챙겨주셨다.

친정집이 마당 넓은 단독주택이었을 때는 친정집 거실에 걸어놓기도 했다.

그러다가 친정도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우리 집으로 돌아왔고 마땅히 걸 데가 없어 구석 신세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주위 사람들이 진품명품 프로를 보면서 농담처럼 우리 집에 있는 그림도 품평을 받아보라고 했다

시아버님이 아끼시던 작품이라니 한 번 받아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게으른 필자 성격에 굳이 그것을 들고 방송국을 찾는다거나 가치를 알아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파트 게시판에 며칠 후 구청에서 성북구민을 위한 진품 명품 감정을 한다는 안내판이 붙었다.

아, 어디 멀리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바로 우리 동네 구청에 가면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니 마음이 설레었다.

이 작품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만약에 진품의 귀한 작품이라면 가격은 얼마나 할 것인지 남편과 필자는 마주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필자는 김칫국 미리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으므로 마음을 숨기고 있었지만, 남편은 아주 진품으로 확신하며 큰 기대를 했다. 저러다 아닐 경우 마음을 다칠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필자도 안목 높으신 시아버님 소유였던 그림이라 은근히 기대감이 들었으며 귀한 작품으로 인정받으면 가보로 간직할 것인지 팔아서 신나게 쓸 것인지 궁리를 하고 있으니 정말 우스운 사람 마음이다.

 

감정 받을 작품을 가지고 1시까지 구청 다목적홀로 모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출사표를 던지고 전쟁에 나가는 듯한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두세 시간 걸린다니 지금부터 들어가면 주차비가 무척 많이 나올 것 같아 다목적홀까지 옮겨 남편이 감정 받게 하고 필자는 근처 돈암 시장에서 장이라도 보기로 했다.

실은 가치가 없는 그림이라는 감정을 들을까 봐 그 장소에 같이 있기가 두려운 마음이었다.

 

시장구경도 하고 장도 보았지만, 시간은 참 더디게 흘렀다.

드디어 세 시간 정도 방황(?)하고 있는데 남편으로부터 빨리 데리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목소리로 보아 뭔가 안 좋은 말을 들은 게 분명했다.

감정위원으로부터 이 그림은 일반인이 그린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감정위원이 잘못 평가한 건 아닌지 의심도 해보면서 허탈한 생각과 함께 헛웃음만 나왔다.

뭐 그렇게 기대를 한 건 아닌데도 요 며칠간 혹시? 하는 생각에 설렜던 마음이 떠올라 자꾸 부끄럽고 웃음이 나왔다.

진품으로 판정받고 비싸게 팔아 신나게 돈을 써 볼 꿈은 한나절 개꿈인 듯 멀리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제 이 그림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에구- 어쩌랴? 아무리 진품이 아니라 해도 몇십 년 우리 집에 있던 것이니 감정위원이 진품을 몰라보고 판정한 것이라 여기며 앞으로도 그냥 품고 살아야겠다.

아직도 두 작품은 다시 포장한 채 다용도실 구석에서 잠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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