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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기사입력 2016-08-02 15:43

회식하고 오는 길 잠실에서 8호선 전철을 탔다. 일반석 빈자리는 있었지만 경로석은 만원이라 습관대로 문가 기둥에 몸을 기대고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석촌, 송파 지나 가락시장역에서 승객이 내리고 탔다. 대개 전철은 승객이 내리고 타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문이 닫히고 다시 출발한다

그런데 통상적인 시간이 지났지만 문이 안 닫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밖에 무슨 일이 있나?’ 다른 승객들도 궁금증이 났나보다. 왜 안가지? 에이 무슨 일 있으면 방송하겠지. 마침 문가에 서 있었기에 슬그머니 목을 빼고 밖을 쳐다 보니 걸음 거리가 많이 불편하신 할머니 한 분이 전철을 타시기 위해 걸어오고 계셨다.

대단히 불편하신 듯 천천히 오시는 것이었다. 밖을 보고 있던 저는 할머니께 응원을 보냈다. 할머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빨리. 할머니께서는 한 치 머뭇거림 없이 계속 전철 출입구를 향해 전진 하신다. 승객들이 더욱 웅성대기 시작한다. 드디어 할머니께서 타셨다. 재보지는 않았어도 평소 출입문 닫히는 시간의 2배는 족히 걸렸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도 할머니 자리에 앉으실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서서히 정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전철. 아!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태워드리기 위해 문 여닫기 담당 기사분이 시간을 끄셨나보구나. 크게 보면 그 시간만큼 다른 승객의 시간을 빼앗은 것이나, 다른 한편으론 기사분의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 지하철은 지하철대로 나름의 매뉴얼이 있을 것이다. 필자 생각에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기다렸다가 문을 닫으라는 사항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할머니 한 분을 위해 시간을 지연시킨 것은 이 열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뒤에서 오는 열차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이 열차에 타고 있는 어느 승객은 초를 다투는 시간개념의 급박함도 있을 수 있다. 열차를 개인적인 개념으로 지연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사 분은 문책 받을 사항을 저지른 것이다.

기사분도 문책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 사람이 사는 전철. 약자를 배려하는 전철. 지하철공사에 상신하고 싶어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걱정되어 하지는 못 할 것 같다.

하루를 흐믓하게 해 준 기사분이 고맙다

덜컹, 아차 졸았구나. 내려야지, 꿈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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