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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 페이스(표정 없는 얼굴)

기사입력 2016-07-13 14:20

▲이순구 화가의 작품, '웃는 얼굴'. (양복희 동년기자)
▲이순구 화가의 작품, '웃는 얼굴'. (양복희 동년기자)
얼굴은 마음의 창이다. 나이를 먹고 세월이 지날수록 사람의 얼굴 표정에서 흐르는 느낌은 어쩌면 그 사람 인격을 말해준다. ‘불혹의 나이 40이 지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옛말도 그런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어버린 얼굴 표정은 상대방을 당혹하게도 한다.

거의 20년 세월이 지나 한국에 와보니 변한 것이 참으로 많았다. 그중에 하나라면 집 앞 동네마다 되어있는 둘레 길은 참으로 감탄할만하다. 천변을 따라 깨끗하게 잘 정리가 되어있고 군데군데 놓여 있는 미술작품들과 시들의 향연, 그리고 감성을 자극하며 울려 퍼지는 멋진 음악들은 어느덧 선진국 문화를 충분히 엿볼 수가 있다. 더구나 국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걷기 운동의 진가는 요즈음 같은 기계시대에 사는 남녀노소에게 필수적이다.

이른 아침 필자도 둘레 길에 의미를 느끼기 위해 남편과 함께 길을 나섰다. 이미 와 있는 부지런한 사람들로 양쪽의 길가에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교차를 했다. 필자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반갑고 신기하기도 해서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굿 모닝!’ 하면서 고개를 숙여 반갑게 아침 인사를 했다. 상대방은 무반응으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멋쩍기도 했지만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 번째 얼굴이 부딪히는 사람을 향해 다시 한번 ‘안녕하세요?’라고 이번에는 한국말로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상대방은 또 어떤 몸짓도 하지 않고 아무런 대꾸가 없다. 어찌나 기분이 나빴는지 슬슬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사람들은 인사를 하면 받아야지. 왜 그래?’라며 혼자 말로 남편에게 있는 대로 불평을 쏟았다.

상기된 얼굴로 땅만을 바라보며 마음을 식혀갈 때쯤 자신도 모르게 앞에 가는 사람을 향해 또 인사가 튀어 나왔다. 앞서가던 사람이 그때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는 이상한 눈초리로 필자를 아래위로 훑어본다. 아마도 조금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는 듯했다. 앞사람은 다시 앞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며 열심히 달렸다. 필자는 당황스럽기도 했으나 그 태도에 화가 나서, 그 사람 들으라고 더 크게 말했다. ‘왜 쳐다 만 보는 거야? 여보, 내가 이상해? 참, 한국 사람들 요상하네. 이해가 안 되는 구만!’ 남편은 필자를 바라보며 웃기 시작했다.

도대체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기만 했다. 미국에서 필자 부부가 손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 미국인 여자 손님이 와서 대뜸 질문을 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웃지를 않느냐는 것이다. 필자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한국 사람에게 많이 미안했다며 장황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지난 시절에 그녀가 회사를 경영했는데, 어느 날 한국 남자 하나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왔단다.

한국 사람은 머리도 참 좋고 똑똑해서 일은 잘하는데, 문제는 얼굴에 전혀 표정이 없이 굳어있다는 것이다. 그 한국 남자는 웃는 것도 아니지만 화를 내는 것도 아니라 종잡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도대체 파악할 수가 없어 참 힘이 들었다며, 과거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늘 말수가 적었고 표정이 없었으며 늘 찡그리고 만 있었다고 표현했다.

더구나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과 다른 인종들 사이에서 한국 사람은 결국 외톨이가 되었다. 다른 사원들은 온통 그 사람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고 했다. 결국에는 그녀가 어쩔 수 없어 한국 사람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지금도 한국 사람만 보면 그녀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또 궁금하기도 하다며 이유를 간곡하게 질문 해왔다.

필자 부부는 어떻게 설명해줄 방법이 막연해서 그냥 대강 얼버무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머리가 좋기로는 중국 사람 다음으로 한국 사람을 알아준다. 요즈음은 인도 사람이 중국 사람을 능가할 정도로 앞서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얼굴에 표정이 없지는 않다. 워낙 생김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못하기는 해도 웃음은 가득했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만 왜 그런지 무표정에 익숙해 있다. 모두가 제 잘난 맛에 개성 강한 도도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선진국 미국에서 가장 밑바닥 일을 하는 멕시칸들도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들의 인생에는 언제나 행복이 넘친다. 후진국이라는 아픔에서 유일한 수단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만나는 어느 곳마다 인사가 끊이지 않는다. 눈을 마주 보며 가볍게, 또는 몇 마디 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서로의 대화를 나눈다. 물론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은 미국보다 태양이 강하지도 않다. 한국에 와서 1년 정도 살다 보니 어느새 필자의 얼굴도 찡그려져 간다. 가만히 거울 속을 들여다보니 삶의 표정은 사악해지고 웃음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포커페이스란 포커게임에서 상대방 패를 애써서 인식하고 자기 패를 상대방이 알지 못하도록 표정을 감춰야 하는 얼굴이다. 무표정만이 자신의 무기로 게임에서 이겨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표정 없는 얼굴로 인식이 되어 있다. 게임이 아닌 삶의 표정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이제 단일 민족인 사람들끼리라도 어색하지만 아침인사 정도는 할 줄 아는 여유, 삶의 지혜가 생겨났으면 좋겠다. 웃음이 넘치는 한국 사람 얼굴이 그리워진다.

▲강아지들도 표정으로 속을 알수가 있다. (양복희 동년기자)
▲강아지들도 표정으로 속을 알수가 있다. (양복희 동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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