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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이런 거 땜에 의 상한다] “나 보험 안 든다” 한마디가 남긴 것은

기사입력 2016-07-0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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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기복은 친구의 신뢰를 시험한다”고 로마 정치인 마르쿠스 키케로가 말했는데 필자가 바로 그 시험에 걸려 넘어졌다. 그 속죄를 하기 위해 어리석은 말로 상처를 주어 잃어버린 친구를 애타게 찾고 있다.

1980년 필자는 직장을 나가면서 대학을 다녔다. 그 친구도 같은 대학에 다니면서 가난을 벗 삼아 공부하는 동병상련을 앓고 있어 서로 의지하며 아주 친했다. 퇴근하면서 호프집에 가서 닭 한 마리에 생맥주를 시켜 놓고 먹다 보면 맥주는 그대로고 닭이 부족해 한 마리 더 시키며 서로 완전 ‘위대(胃大)’하다며 킬킬대기도 했다. 쉬는 날엔 등산·여행을 함께하는 등 많은 시간을 같이했다. 우린 서로 마음속에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 친구는 여자다우면서 어른스럽고 친절해 인기가 많았다. 반면 필자는 ‘나 홀로 스타일’이어서 다른 동료들과는 친하지 않았는데 그 친구는 필자보다 한 살 어린데도 언니처럼 필자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했다. 필자를 잘 챙겨 주었을 뿐 아니라 언제나 필자 편을 들어 주어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필자가 대학 4학년에 논문을 쓸 때 명필인 그 친구가 ‘완전 대필 서비스’까지 해주어 예쁜 글씨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 친구가 자신보다 못한(이것은 필자 생각) 남자 친구가 생겼을 때 얼마나 말렸는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결혼을 했다. 자연스레 같이 지낼 시간이 적어졌고, 또한 직장을 서로 옮기게 되면서 소식이 뜸하게 됐다.

그러던 중 1990년대 후반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보험설계사를 한다는 아픈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에 필자는 다시 연락할 수밖에 없었고, 갖은 설득 끝에 그 친구가 필자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집에 오기로 한 날 전화가 걸려와 반갑게 인사가 끝나고 약도를 알려주고 나서 필자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말이 “근데 숙아, 난 보험은 안 들을 거다”였다. 어쩜 이리도 모진 말을 뱉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그 친구는 보험을 한다는 자체만도 힘들었을 텐데 왜 그 말이 나왔는지 필자도 모르겠다. 보험을 들라고 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친구이기에 당연히 만나러 오는 것인데….

당시엔 그것이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친구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그 친구가 힘들 때 함께해 주기만 했어도 힘이 됐을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연히 그 친구는 집에 오지도, 연락도 없었다. 그러고는 영영 소식이 끊겼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잘못을 느끼고 연락했으나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연락이 되지 않았다. 처음엔 자신이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꼭 만나야만 한다. 용서받기 위해서도, 그 친구가 그리워서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옛 동료들을 만나거나 전화할 때 그 친구에 대해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다. 페이스북에서도, 친구 찾기에서도, 인터넷에서도 그 친구 이름을 찾을 수가 없다.

영화 <제인 에어>에서 로체스터 경이 자신의 집으로 간 제인이 그리워 “제인, 제인, 제인” 부르는 소리가 아득히 먼 거리임에도 제인에게 들려 제인이 로체스터경에게 간 것처럼 혹여나 그 친구를 부르면 들릴까 봐 걸어가면서도,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몇 번을 부르기도 했었다.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장소가 어디든 무릎 꿇고 싹싹 빌 것이다. 제발 용서해 달라고…, 다시 친구가 되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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