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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기획... 내가 이 독립투사에 꽂힌 이유] 곽재우

기사입력 2016-06-17 14:51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이 전쟁에 패한 가장 큰 요인으로 곽재우 장군의 민병으로 꼽았다고 한다. 어느날 갑자기 생각도 않던 의병이 나타나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곽재우 장군이 휘두르는 게릴라전술은 어느 병법이나 전술에도 없는 신출귀몰한 전술을 구사하므로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곽재우는 의병대장으로, 무인으로 알고 있지만 원래 1585년(선조 18) 34세의 나이로 문과시험에 뽑히고도 지은 글이 왕의 뜻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무효가 되어 남강(南江)과 낙동강의 합류 지점인 기강에서 농사를 짓고 살게 되었다.

곽재우 장군이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하며 재산을 모은 지 3년 만인 1592년 4월 14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관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데 비해 그는 같은 달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이 군량미를 얻기 위하여 전라도 곡창지대로 향하던 길목인 기강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모은 재산을 의병들의 가솔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참여를 독려하여 가능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10여 명에 불과한 의병은 5월 4일 기강 전투에서 첫 승리를 한 이후는 2000명이 넘었는데 전란 동안 그 많은 민간의병을 먹이고 입혀 본인의 재산은 물론 친척과 처가의 재산까지 거덜 냈다고 한다. 물론 가족이나 친척들은 힘든 면이 있었겠지만 큰 공을 세운 것이다. 

부패한 조정의 관료들에 의해 그 공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기에 지금까지도 제대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바다에 성웅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육지에 성웅 곽재우 장군이 있었음을 상기하는 영화나 드라마들이 만들어져 곽재우 장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다시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 글쓴이의 남편이 곽가이다. 본인과 주변에서 분명히 조상 중에 크게 나라를 구한이 가 있어 아내와 자식 복을 타고났다고 본인과 주변에서 한결같이 입을 모으고 있어서 조사해보았다. 곽재우 장군이 나라를 구해주신 것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면서 이글을 마친다(감사한 마음도 있으면서 왜 좀 이렇게 불편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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