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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도사 되는 법] 여직원이 던진 한 마디

기사입력 2016-05-24 14:33

▲한국생산성본부에서 강의 중인 필자. (손웅익 동년기자)
▲한국생산성본부에서 강의 중인 필자. (손웅익 동년기자)
2000년대 초반 ‘아름다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강의를 의뢰받은 적이 있다. 주제를 보고 필자는 대단원에 나이 들어 얼굴에 잔주름 가득한 미국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두건을 한 채 뼈만 앙상한 흑인 어린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넣기로 했다. 이 사진만큼 ‘아름다움의 지속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시절 필자는 완전 컴맹이었고 강의용 파워포인트 교재는 디자인팀 여직원이 만들어 주곤 했다. 필자는 그날도 평소대로 강의 콘티를 손으로 스케치한 후 디자인팀 여직원에게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뒷부분에는 헵번이 머리에 보자기를 두른 멋진 사진을 넣어서.

필자의 요청은 처절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필자가 “네이버에서 헵번을 치면 그의 사진이 죽 나오는데 몇 번째 페이지를 열고 거기서 머리에 보자기를 둘러쓴 헵번의 사진을 파워포인트에 넣어줘요”라고 여직원에게 설명하자 그 여직원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안티를 던진 것이다. 그가 날린 한마디는 바로 “사진을 캡처해서 저한테 이메일을 보내 주시면 간단하잖아요!” “….” 그의 말 중에 ‘이메일’이라는 단어는 알아듣겠는데 ‘캡처’는 도대체 알아듣지 못할 ‘외계어’였다.

그 여직원이 도도한 자세로 자리로 돌아간 후 필자는 생각에 잠겼다.

필자는 무거운 환등기와 슬라이드 트레이를 양손에 들고 강의 다녔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새끼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USB라는 신기한 물건만 호주머니에 넣고 가면 되는 세상으로 변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천지개벽했는데 필자는 아직도 아날로그 세상에 머물러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젠가 직원의 도움을 받지 못할 상황이 되면 그야말로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바로 ‘기분 잡치지만 컴퓨터 공부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50세 넘어서 젊은 사람들과 컴퓨터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장면을 떠올리니 이것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필자 아이들이 어릴 때 집으로 모셔서 배우던 컴퓨터 선생님. 그렇게 해서 필자는 퇴근 후 집에서 컴퓨터 개인교습을 받게 됐다. 수개월에 걸쳐 인터넷 검색 방법, 한글 워드 작성법, 이메일 주고받는 법, 엑셀, 파워포인트, 포토샵을 두루 배웠다. 블로그 만드는 법을 배워 블로그도 개설했다. 필요한 사진을 ‘캡처’해서 파워포인트를 만드는 것 역시 공부했다. 아날로그에 익숙한 필자가 컴퓨터를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에 좀 어려운 면도 있었으나 반복 연습으로 극복했다.

어느 날 회사 디자인 회의 시간에 필자는 호주머니에서 USB를 턱 하니 꺼내 노트북에 장착하고 슬라이드를 실행했다. 그날 깜짝 강의에 사용된 파워포인트 교안을 필자가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원들은 눈이 동그래져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컴퓨터는 기초적인 것을 배우고 나면 그 외의 다양한 기능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파워포인트로 몇 년 동안 강의 교안을 만들다 보니 이제 손에 익게 된 것이다. 요즘에는 글씨체와 크기, 사진의 배열, 배경 색상 등 슬라이드 디자인에도 신경 쓰고 있다.

몇 년 전 보자기를 쓴 헵번의 사진을 ‘캡처’해서 이메일로 보내라던 그 여직원의 당돌한 한마디가 발단돼 필자 앞에 찬란한 IT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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