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필씨는 며칠 전, 지인들끼리 공유하는 SNS에 올라온 다급한 메시지를 봤습니다.
“랩탑에서 아침부터 업데이트한다며 전원을 끄지 말라더니 106/155에서 꿈쩍도 안 합니다. AS센터에 전화했더니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기다리라는데, 이거 왜 이러죠? 당장 작업해야 하는데 미치겠다 꾀꼬리. 방법 아는 사람 도와달라 꾀꼬리!”
연세가 좀 있는 선배의 꾀꼬리 절규에 후배들의 답글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인 도움은 못되면서 그 심정만 이해할 뿐인 경험자들의 답글이 먼저 등장했습니다.
“업데이트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보세요. 저도 가끔 그래요.”
“전 그 상태로 다섯 시간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방법은 안 가르쳐주면서 야속한 질책만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애당초 자동 업데이트가 안 되게 설정을 해두셨어야 하는데.”
이제 와 어쩌라고. 하지만 해결 후 이성을 찾고 나면 제법 쓸 만한 생활의 지혜일 수도 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라는 듯한 조언도 뒤따랐습니다.
“포맷을 하셔야 할 듯.”
“일단 강제 종료로 전원을 끄세요.”
용필씨도 한마디 보탰습니다.
“인터넷 모뎀을 껐다가 다시 켜보세요.”
기계의 고장은 껐다 켜는 것이 진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제법 도움이 될 듯한 전문용어를 들이밀기도 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디모스를 검색해서 시키는 대로 해보세요.”
한 시간가량 설왕설래의 과정을 거치더니, 결국 대다수의 의견은 이렇게 모아졌습니다.
“그냥 사람 부르세요.”
며칠 후, 또다시 설왕설래할 일이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용필씨의 또 다른 지인들끼리 모여 승용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는 중이었습니다.
차 안에는 모두 네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초행길이라 내비게이션에 의존해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같이 운전 좀 한다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같이 남이 운전하는 게 답답한 자들이었고, 하나같이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걸핏하면 반항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각별히 편애하는 내비게이션 앱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앱의 종류는 각기 달랐으나 편애하는 이유만은 같았습니다.
“알아서, 자동으로, 업그레이드를 잘하거든!”
각자의 스마트폰을 열어 자신이 쓰는 앱이 가장 좋다고 우기는 동안 운전자는 안내 음성을 무시한 대가로 길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는 업그레이드가 되고 나니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용필씨의 생각에 업데이트나 업그레이드나 결국 마찬가지입니다.
최신의 것,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것, 품격이나 질이 높아지는 것, 끊임없이 결점을 보완하고 개선해나가는 것, 뭐 대충 이런 거 아닌가.
제 맘대로 업데이트가 되는 중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당장에 급한 작업을 못 하게 되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기다리는 수밖에.
기껏 잘 쓰고 있는데 업그레이드가 되는 바람에 낯설고 불편해져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적응하는 수밖에.
그나마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라고 의사결정권이라도 주면, 짐짓 거만한 태도로 ‘나중에’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지덕지할 일입니다. 물론 용필씨처럼 반항지수가 낮은 사람들은 머리가 판단하기도 전에 이미 손가락은 ‘지금’이라든가 ‘동의’를 누르고 있긴 합니다.
세상은 점점 용필씨를 이렇게 길들입니다. 시키는 대로 하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다 알아서 해주겠다고. 그것도 협박이 아닌 친절한 서비스와 미소와 각종 불필요한 혜택을 선물처럼 한아름 안겨주면. 한없는 순응 마인드로 오늘도 용필씨는 ‘지금’을, ‘동의’를, ‘좋아요’를 누르고 또 누릅니다.
이런 용필씨,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 고민합니다. 용필씨도 이제 새해를 맞이해 반항지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동 업데이트 기능 따위는 용필씨에게 장착되어 있지 않으니, 용필씨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지금 ‘동의’를 선택한다면 당분간 자신이 낯설고 불편해져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적응하는 수밖에.
△윤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작가 및 글쓰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