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속에버무린 인생까지 함께 가르쳐요
인터뷰 <<롱런 아카데미 ‘아빠요리교실’ 이우현 요리 강사
저녁 8시,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수도전기공고 교정. 해질 무렵 텅 빈 운동장과 교사를 지나 뒤쪽으로 돌아가자 환하게 불 켜진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쥐 죽은 듯 고요한 바깥과는 달리, 이 건물 1층에 자리한 요리강습실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활기가 넘쳤다. 버섯을 손질하고, 쌀을 씻고, 마늘을 다지고, 채소를 써느라 분주했다. 바쁜 손놀림과 도마질, 수돗물 틀고 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남성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롱런 아카데미 ‘아빠요리교실’ 이우현 요리사의 레시피 설명에 쫑긋한다.
수강생의 나이나 수준은?
요즘은 나이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요리에 관심 갖는 남성이 많습니다. 주로 4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합니다. 깨소금이 깨와 소금이라고 아는 초보부터 파스타 소스를 구분할 줄 아는 전문가 수준까지 레벨이 극과 극입니다.
수업 진행의 특징은?
남자들은 요리도 과학적,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설명을 자세히 합니다. 고위 공직자 출신이 많은 편인데 그들은 대충이라는 게 없어요. 가르치면 정확하게 따라합니다. 계량도 정확하게 하고 설거지, 뒷정리도 깔끔하게 합니다. 은퇴하신 분이나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일주일에 한 번 오후 7시쯤에 수업을 합니다. 필수적인 생활 요리의 기본 레시피를 알려주는 수업이 주를 이루지만 특별 레시피를 가르치는 수업도 합니다.
수강생들의 동기는?
삼식이도 아니고 더 이상 아내가 해주는 밥을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가 미안하다는 생각에 오신 분도 있습니다. 가족에게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요리교실에 나온 사람도 있고요. 50대 이후 남자들은 가족의 관심으로부터 점차 멀어지죠. 아빠 혹은 남편이 요리를 해주면 좀 더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참여하는 분도 많습니다. 동기는 서로 다르지만 열정은 하나같이 뜨겁습니다.
아빠요리교실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남성 대상 요리교실은 주부 대상 요리강습과 다릅니다. 수강생 대부분이 요리 초보이자 살림에 문외한이다보니 어떤 재료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양념의 종류엔 뭐가 있고 각각의 쓰임새는 어떻게 다른지 등 기초부터 하나씩 꼼꼼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죠.
칼질 잘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채소 고르기, 고기와 생선 고르기, 좋은 수입품 구별하기, 시장 상인과 친해지기 등등을 알려주는 데 집중하는 편입니다. 장보기를 너무 너무 좋아하더군요. 제철에 나는 가장 싱싱하고 맛있는 식자재를 고르는 요령을 알게 되니까요. 좋은 재료만으로도 음식 맛의 반 이상이 결정되고 영양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수강생들이 적응은 잘 하나요?
수강하시는 분들은 은퇴하셨거나 퇴직을 준비하신 시니어들입니다. 이들은 사실 소설책 하나 정도는 쓸 거리가 되는 스토리가 많은 분들이죠. 그런 분들이 요리나 음식이란 공통 주제가 있으니 각자의 추억, 경험담도 이야기하고, 재료를 설명하면 곧바로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워합니다. 최근에 다녀온 식당, 먹어본 음식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죠. 각자 집에서 가족들을 위한 요리를 하지만 수강생들끼리도 직접 요리를 만들어 초대 모임을 갖기도 하고 연령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기도 한답니다.
주로 무엇을 만들고 싶어 하나요?
대체로 된장찌개, 김치찌개, 미역국을 만들고 싶어 온 분들이 많아요. 2개월 동안 1주에 2개의 요리를 배우게 되니 16가지 정도 레시피를 숙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 아내들이 잘 안 만드는 폼 나는 요리들을 비장의 무기로 알려드립니다. 특히 중국요리 탕수육이나 유산슬 등을요. 처음에 남편이 요리를 배운다고 하면 코웃음을 치는 부인들이 많죠. 그러다 어설프지만 가족들을 위해 이것저것 만드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주말이나 생일에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주는데 기분 나빠할 부인이 있을까요.
수강생들이 요리를 배운 이후 달라진 점은?
요리를 하면서 그동안 365일 묵묵히 끼니를 챙겨준 아내에게 감사함을 느꼈다는 수강생들이 많습니다. 마트나 장을 보기 시작하니까 이제 마트 동행이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다고 합니다. 장보기와 요리를 놀이처럼 즐기면서 대화도 많이 나눈다고 하는 수강생이 늘고 있습니다.
싱크대에서 조리도구를 꺼낼 때마다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구부리다보니 아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고, 아내를 위해 수백 만 원을 들여 주방을 개조해 주는 일도 있고요. 맛을 타박하거나 요리가 뭐가 어렵냐고 했던 남편들이 정말 반성을 많이 한다는 것이 큰 변화죠.
아빠요리교실 강사로서 느끼는 보람은?
정말 소년처럼 천진한 모습으로 호기심에 가득 차서 요리법을 배우고, 또 숙제 검사받듯 자신이 한 요리 사진을 찍어 제게 보내면서 즐거워하죠. 그들에게 요리는 일이 아니라 즐거움이고 이 과정이 힐링인 것 같습니다. 시장 보시다 저한테 전화를 걸어 레시피 성분을 물어보기도 합니다. 피드백이 빠르고 집중력이 있어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래서 저는 남자요리 강의에 요즘 푹 빠져 있습니다.
{ 미니 인터뷰 }
아빠요리교실 김태민 수강생(59세)
“유산슬과 피망잡채를 잘해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김태민 씨는 금요일 오후면 마음이 바쁘다. 요리 배우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교직에 있는 아내와 아들 딸을 위해 요리하는 게 삶의 즐거움이다. 요리교실에 다닌 지 5년 됐다. 유산슬, 피망잡채 정도는 쉽게 만드는 솜씨다. 그는 최소한 식사는 스스로 챙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고 요리를 시작했다.
“이제는 남자들도 거대한 꿈만큼이나 작은 행복을 추구해서 스스로의 기쁨을 발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내와 아이들이 각자의 일로 집을 비운 날, 혼자 뭔가 먹으려면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그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맛있고 영양가 있으면서 만들기 쉬운 요리를 만들어 먹다보니 고독한 순간에도 행복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저를 위로해주고, 또 가족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음식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습니다.”
정말 부엌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았던 그도 요리를 하니 처음 한두 번은 오히려 부인에게 구박만 받았다. 재료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늘 물어보고, 요리한답시고 어질러 놓고 설거지도 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이제는 설거지도 하고 제법 맛있는 요리를 하니까 계속 다니라고 한다.
요리하는 행위 자체가 창작 과정인 것이 매력적이라는 그는 초보딱지를 떼고 싶다면 자기만의 양념박스를 사용하라고 한다. 교회 지인이나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 주다 보니 최근에는 조리기구나 그릇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는 요리를 즐기면서 마음이 훨씬 느긋해지고 새로운 것을 해내면서 느끼는 성취감 또한 크다고 강조했다.
아빠요리교실은 연말에는 배운 것 중 자신 있는 요리 몇 가지를 만들어서 독거노인 등 불우이웃들에게 주는 사랑나누기행사도 한다.
<<집에서 요리할 때 지켜야 할 5가지 <<
1. 와이프한테 아는 척하지 말 것
2. 아내의 노고를 치하해줄 것
3. 요리하는 것보다
주방시설이나 기구에 관심을 가질 것
4. 요리 레시피에 관해 얘기하지 말 것
5. 설거지는 꼭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