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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부터의 자유 PART1] “나? 백 여섯살!”

기사입력 2015-02-06 13:50

106세 임용목씨가 살아가는 여유

소한(小寒)인 1월 6일 한국투자증권 광명 지점 객장에서 만난 임용목(林容睦) 할아버지는 이미 객장 유명인사였다.

광명 지점장은 “처음 봤을 때 70세쯤 되신 줄 알았다. 늘 욕심이 없으신 편이고 잘 웃고 즐기신다”라고 말했다. 잠깐,70세쯤으로 보였다는 말이 이상하다. 임용목 할아버지에게 태어난 해를 물어보니 1909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굴곡진 현대사를 몸소 겪으며 한 세기를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2015년인 올해로 106세!직접 객장까지 와서 주식 투자를 즐기는 106세 할아버지라니, 믿기는가? 그러나 그저 100세가 넘은 나이를 지탱하느라 애쓰는 수준이 아닌, 누구보다 즐겁게 사는 모습을 실제로 확인하니 의심은 경탄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가 배워야 할 임용목 할아버지의 특별한 장생(長生) 라이프 .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기자 teinny@etoday.co.kr

임용목 할아버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일기예보가 빗나가서 따뜻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유난히 매서운 한파가 계속되는 올해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뚜벅뚜벅 계단으로 걸어 내려와 식당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믿기 힘들었다. 이분이 한 세기를 자신의 나이로 채우고 올해로 106세를 맞이했다니. 굳이 비유하자면 한 사람이 태어나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다시 태어나서 또 한 번 은퇴를 맞이하는 걸 준비하고 있어야 맞먹을 수 있는 나이다. 세계 최고령 남성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이가 올해 112세. 임 할아버지와는 불과 6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 세기를 넘기고도 앞으로의 삶이 더욱 기대된다는 임 할아버지는 85세의 친구와 얘기하느라 객장에서도 활기가 넘친다.

“26년 전 45만 원으로 시작한 주식 놀이야. 아직도 꾸준히 즐기면서 하고 있는 중이지. 욕심을 부렸으면 예전에 사단 났을 거여, 내가 죽든가 돈이 떨어져 우울하게 살고 있겄지.”

임 할아버지가 놀라운 점은 나이뿐만이 아니라 그 나이에도 여전히 펄펄하게 일상을 즐기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귀가 다소 안 들리는 듯했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더 목소리에 깃든 힘이 뜨거웠고, 그런 기질은 30년은 어린 70대로 보이는 외모로 이어지는 듯했다.

“한 세기를 넘겼지만 앞으로의 삶이 더욱 기대돼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배움의 욕구

경기도 이천 장호원에 자리한 유난히 가난했던 집에서 태어난 임 할아버지는 돈이 없어서 초등학교 6년을 교장 선생님을 도와 학교 정비를 하는 대신 학비를 면제 받으며 다녀야 했다. 첫 직장은 일제가 운영하던 한국산업은행이었다. 그곳에서 말단 직원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15년 근속했지만 결국 해고된다. 일하던 15년 동안 월급으로 사서 읽은 6000권의 책으로 인해 민족의식이 강해진 그가 조선의 열등함을 비난하던 은행장과 부딪친 결과였다. 일자리는 잃었지만 배우고 싶다는 욕구는 더 커져 있었다. 그는 일본으로 가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직장에서 안 좋게 끝나는 바람에 일본 입국이 가능할지가 불확실했다. 그러나 천운이 따른 덕분에 그는 일본에서 당시 유일한 종합대학교였던 일본대학교의 상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행운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임 할아버지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학도병 모집에 붙들려서 결국 중국으로 끌려가게 된다. 중국에서 갖은 고생을 겪다가 마침내 해방을 맞이하게 됐고 1946년 6월에 귀국하게 됐을 때 그의 나이는 37세, 어느새 30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평생 베필을 만나게 됐다. 아내와는 결혼 이후 63년을 함께 했다. 결혼할 때 임 할아버지보다 17살 연하였던 20살의 아내는 어느새 그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나이가 됐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7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임 할아버지가 다니는 밀알교회는 아내가 생전에 권사로서 설립한 교회다.

▲임용목 할아버지는 증권 객장에 나와 신나게 논다고 한다. “26년 전 45만 원으로 시작한 주식 놀이야. 아직도 꾸준히 즐기면서 하고 있는 중이지. 욕심을 부렸으면 예전에 사단 났을거여, 내가 죽던가 돈이 떨어져 우울하게 살고 있겄지.”

불혹의 나이에 고려대 1회 졸업생

“귀국하여 보성전문학교가 민족학교의 기치를 걸고 고려대학교가 되어 2학년 학생을 모집한다는 걸 보게 됐어요. 그래서 시험을 치르고 입학하게 됐죠. 1949년에 졸업하게 됐지. 1회 졸업생이었어요.”

청량리에서 영등포까지 걸어서 왕복 두 번 씩 의류배달을 해야 하기에 학교도 갈 수 없었다. 졸업하기까지 동기들이 출석을 해주고 해서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했을 때가 이미 불혹의 나이인 40세였다. 결혼도 하고 학업도 이루고 나이도 찼으니 안정적인 중년을 맞이할 때였다. 그러나 시대 자체가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졸업 후 이듬해 한국전쟁이 터져, 그는 피란을 떠나야 했다.

현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있는 자리는 동대문운동장이 있었던 자리였고, 동대문운동장은 임 할아버지가 가게를 운영할 때는 서울운동장이라고 불렸었다. 임 할아버지는 피난에서 돌아와 서울운동장 밑에 제일체육사라는 가게를 차려 이후 30년을 운영했다. 그러나 70세가 되던 해에 건물에 불이 나서 물건이 모두 불탔고 그걸 갚기 위해 가게를 정리해야 했다. 그는 서울에서 밀려나서 광명시에 정착해야 했다.

“광명시에 와서는 약간의 돈으로 장사를 좀 하다가, 지금은 5남매인 자식들이 생활비랑 이것, 저것하면 한 달에 한 90만 원 정도 받네. 생활하고 남는 돈은 객장 손님들에게 커피를 주거나 공원에 가서 노인들이나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고 있어요. 내가 광명의 사탕할아버지로도 유명해요(웃음).”

욕심이 없기에 건강하다

▲객장에 있는 85세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임 할아버지의 집안은 장수 집안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비록 아편을 하고 자다가 요절했지만 아버지는 그 시절에 85세까지 살았다. 하지만 장수와는 별개로 임 할아버지의 건강은 나이에 비해 이상적이다. 그는 아침에 혈압약, 저녁에 전립선약을 먹고 감기약을 타기 위해 병원을 가는 정도로 자신을 관리하고 있었다. 임플란트, 틀니 치료 안 하고도 치아가 여전히 튼튼했다. 음식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드셨으며 함께 식사를 하면서 밥알 한 톨도 남김없이 한 그릇이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의 건강함을 증명하는 지표는 인터뷰 내내 볼 수 있었다. 그런 활기는 삶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바탕하고 있어서 가능한 부분처럼 보였다.

“욕심이 없다.” 임 할아버지는 자신이 겪은 여러 가지 고난 속에서도 지금까지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이유를 욕심이 없다는 것에서 찾았다. 살펴보면 그의 삶에는 욕심보다는 배움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독학으로 배우고 익혀 일본으로 갔던 일, 불혹의 나이에 대학교를 졸업한 일, 새벽 3시에 일어나 10시에 객장에 나와 주식 투자를 하는 모습 등등은 배움에 대한 본능적인 욕심이 없으면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심지어 젊은 시절의 그는 시를 쓴 적도 있었다. 당시 임성산이라는 필명을 썼던 그는 아직 무명이던 박목월, 서정주 시인들과 함께 문예지에 글이 실린 적도 있다고 했다. 대표로 뽑혀 학도병 수기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교우회가 교우들에게 제공하는 월례강좌에서도 꾸준히 30년동안 개근했다. 물론 지하철에서도 다른 노인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임 할아버지는 거기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70대가 아니냐고 물었었다고.

100여 년의 인생, 잃지 않고 살았다

“살아오면서 못 해서 아쉬운 건 하나도 없어요. 난 그리 가진 게 많지 않은데도 내가 부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주식 투자를 시작한 이후로 돈을 잃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물론 처음 투자한 45만 원이라는 돈이 확 불어나지도 않았지만, 잃지도 않고 투자를 즐길 수 있는 수준. 임 할아버지는 그걸 하나님 덕분으로 돌렸다. 자신의 마음이 평화롭다 보니 하나님이 그 돈을 그대로 쓰라고 놔두고 있다는 것이다. 106세가 되었음에도 꾸준하게 가지고 있는 긍정의 정신은 천성이기도, 그동안의 삶을 통해 단련된 것이기도 했다.

“희망을 갖고 인생은 영원히 빛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기에 이렇게 살 수 있었다고 봐요. 그래서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올바르게 사는 것, 그리고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게 중요해요.”

임 할아버지는 “진실로 열정을 다해 미련없이 살아왔다”며 “미련없이 살아야만 버리는 것도, 내려 놓는 것도 순수해질 수 있다”고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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