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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아닌, 할 수 있게” 부모 노쇠를 마주한 40대 안내서

입력 2026-10-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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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돌봄] 노화와 노쇠 이해부터 돌봄 방법까지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부모의 걸음이 전보다 느려지고, 입맛이 없어지고, 복용하는 약이 늘어난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흔히 ‘나이 들어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의 작은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질 수 있다. 부모 돌봄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40대에 접어들면 부모의 나이 듦을 실감하는 순간이 늘어난다. 책 ‘부모의 노쇠와 나의 노화’를 펴낸 다섯 명의 저자 역시 부모의 변화를 직접 겪은 40대 자녀들이다. 이들은 “40대는 부모의 노쇠를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며 자신의 노화 역시 현실로 체감하는 생애 전환기”라고 말한다.

책은 자연스러운 노화와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노쇠의 차이부터 근육·인지·영양·약 복용·정서의 변화까지 두루 살핀다. 더불어 부모에게 돌봄이 필요해지는 신호는 무엇인지, 그때 가족은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는지 짚는다. 대표 저자인 정영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와 함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보건복지부 ‘2023 노인실태조사’(이미지=이은숙 기자ㆍAI 생성)
▲보건복지부 ‘2023 노인실태조사’(이미지=이은숙 기자ㆍAI 생성)

노화와 노쇠, 그리고 돌봄

팔순 아버지가 좋아하던 테니스를 그만두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흔아홉 아들, 어머니의 가늘어진 다리를 걱정하면서 정작 자기 엉덩이가 납작해지는 것도 신경 쓰이는 아들…. 책 속 사례 인물 역시 대부분 40대 중후반으로, 부모의 노쇠와 자신의 노화를 동시에 목격하는 세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노화’와 ‘노쇠’가 다르다는 점이다. 노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신체와 인지기능이 서서히 변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반면 노쇠는 감염이나 수술, 낙상처럼 비교적 작은 스트레스에도 몸이 크게 흔들리고 회복이 늦어질 만큼 신체적·정신적 예비능력이 떨어진 취약한 상태를 말한다. 의도하지 않은 체중 감소, 잦은 피로, 느려진 걸음, 약해진 근력, 줄어든 활동량 등이 대표적인 신호다. 특히 갑자기 기능이 떨어지거나 이전에 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됐다면 단순히 ‘나이 탓’으로 넘기지 말고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65세 이상 노인 약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쇠 4.6%, 노쇠 전(前) 단계 32.2%, 건강 63.2%로 나타났다. 정영일 교수는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노쇠는 되돌릴 수 있다”며 “노인 세 명 중 한 명은 아직 되돌릴 수 있는 노쇠 전 단계에 있다. 이 구간이 바로 자녀가 개입할 수 있는 ‘노란 신호등’”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돌봄은 부모가 혼자 생활하기 어려워진 뒤에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성을 잃기 전에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부모에게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면 돌봄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필요한 제도와 서비스를 한꺼번에 알아보려 하면 오히려 막막해질 수 있다. 정 교수는 △부모의 변화 기록하기 △건강상태 점검하기 △부모가 지키고 싶은 삶을 먼저 묻기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돌봄 범위 정하기 △공적 서비스 연결하기 등 5단계 접근법을 제안했다.

특히 마지막 단계에서는 장기요양보험이나 재가 서비스, 주야간보호 등 부모에게 필요한 제도를 미리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한 서비스는 지역마다 이용 가능 여부와 대상이 다른 만큼, 주소지 행정복지센터 등 공적 창구를 통해 부모의 상황에 맞는 지원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위기가 닥친 뒤 급하게 서비스를 찾기보다 작은 도움부터 시작하고, 부모의 상태가 달라질 때마다 필요한 서비스를 조정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정영일 교수는 “돌봄은 서비스를 많이 붙이는 일이 아니라, 부모가 지키고 싶은 일상을 중심으로 필요한 도움을 맞추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돌봄에도 ‘적정 거리’가 필요하다

부모를 돌본다고 해서 자녀가 부모의 삶까지 대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눈에는 도움이 필요한데 부모는 “아직 괜찮다”, “남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며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정영일 교수는 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대신 해주는 것보다 할 수 있게 돕는 것”을 꼽았다. 필요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생활 방식과 선택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이 독립적인 삶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화할 때는 △부모가 계속 지키고 싶은 생활이 무엇인지 묻고 △현재의 위험을 구체적인 사실로 설명한 뒤 △가능한 선택지를 제시하고 △함께 결정해 일정 기간 뒤 다시 점검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병원에 꼭 가셔야 해요”라고 말하기보다 “최근 두 번 넘어지셨는데 앞으로도 혼자 시장에 다니려면 무엇을 확인하면 좋을까요?”라고 묻는 식이다. 처음부터 큰 서비스를 권하기보다 일주일에 한두 번 도움을 받아보는 등 작게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노쇠가 심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거나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있다면 의료·복지 전문가와 함께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조율해야 하는 것은 부모의 요구만이 아니다. 자녀가 어디까지 돌볼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병원 동행이나 식사·약 관리 등 자녀가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고, 부족한 부분은 외부의 도움을 더하는 식이다. 정 교수는 “자녀가 감당할 수 없는 돌봄을 무리하게 약속하면 결국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길 수 있다”며 서로의 가능 범위를 솔직하게 확인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돌봄이라고 강조했다.

부모를 집에서 돌볼지, 주야간보호나 요양 시설 등 외부 돌봄을 이용할지도 같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영일 교수는 “집에서 모시는 것이 효도이고, 시설을 이용하면 불효라는 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부모의 안전과 삶의 질, 돌봄의 지속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익숙한 곳에서 나이 들기 위해서는 집에 머무는 것 자체보다 필요한 의료·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 교수는 “‘어디에 사는가’만큼 ‘어떻게 연결되어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돌봄은 부모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고, 부모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묻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정 교수는 “다만 너무 늦게 돕는 것도, 너무 일찍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며 “좋은 돌봄은 부모의 삶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도움을 더해 부모가 가능한 한 오래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남게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부모의 노쇠를 지켜보는 과정은 자녀에게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정 교수는 “부모를 보며 배운 것을 오늘 내 생활에서 한 가지라도 바꾸는 것, 그것이 두 세대가 함께 건강해지는 가장 현실적인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미지=이은숙 기자ㆍAI 생성)
(이미지=이은숙 기자ㆍAI 생성)

도움말 정영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

약학을 전공한 뒤 노인 건강을 중심으로 보건학을 연구해온 전문가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보건의료 정책 연구와 자문 활동을 하고 있다. 다수의 학술 교재를 집필했으며, 조병희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젊게 늙는 사회’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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