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소답사기] 충북 진천의 보련산 보탑사
그곳에 가면 아주 오래전 기억 속의 볕과 바람이 깃든 산천이 저절로 느껴진다. 그 길 위를 걷고 천천히 달리다가 문득 멈춰 서기도 하는 것은 그곳의 자연이 주는 한없는 너그러움 때문이다. 살아서는 진천이라더니, 생거진천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원이 아름다운 3층 목탑의 보탑사
이른 아침, 경내의 정갈한 기운이 기분 좋은 보탑사로 먼저 간다. 보탑사로 향하는 조붓한 산길을 따라 주춤주춤 달리다 보면 길 옆으로는 계곡이다. 그 길 끝에 보이는 300년을 훌쩍 넘긴 우람한 느티나무가 사찰의 수호신처럼 든든하다. 계단을 오르는 입구의 오래된 소나무와 잘 어우러진 보탑사 3층 목탑 꼭대기가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절집 마당에 이르면 단아하면서도 웅장한 탑의 위용이 고요한 경내를 압도한다. 전각 사이로 형형색색의 연등이 줄을 잇고, 절 마당 입구엔 여름을 보내면서 아쉬운 듯 남아 있는 몇 송이 작약이 유난히 붉다.
보련산 보탑사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자리 잡았다.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지대였고, 김유신 장군이 군사를 훈련하던 요충지였던 땅이다. 보탑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먼저 3층 목탑이다. 1990년대 초 고건축 문화재 팀이 답사하고 대목수 신영훈 장인의 계획에 따라 건축된 보탑사는 신라시대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했다는 면에서 가치를 지닌다. 내부로 들어가면 층별로 대웅전·법보전·미륵전으로 이루어졌는데, 계단을 통해 3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목탑 주변의 전각들이 아기자기하고 아늑하다. 적조전의 거대한 와불, 부처님과 오백나한을 모신 영산전, 지장전, 바람에 흔들리는 목어나 풍경 소리까지 한없이 다정하다. 무엇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수목과 예쁜 꽃들이 지천이다. 오가는 이들은 서로 두 손 모아 인사 나누고, 곳곳에서 꽃 사진 찍느라 열중한 모습이다. 지나다가 물맛 좋은 감로수 한 바가지 받아 목을 축이고 나면 세상 마음 편해진다.
만뢰산 자연생태공원의 숲캉스
보탑사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곧바로 만뢰산 자연생태공원이 나타난다. 만뢰산은 진천읍과 백곡면에 걸쳐 있는 해발 611.7m로 진천에서 가장 높다. 산으로 둘러싸인 만뢰산 숲속 생태공원에 들어서면 숲길이 푸르게 펼쳐진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부드러운 바람결이 지나는 이의 마음을 스치고, 숲은 그 자체로 쉼이 된다.
울창한 산자락 아래 생태연못의 구름다리를 건너면 물가의 비비추와 보랏빛 꽃창포 색감이 선명하다. 연못에선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시원하게 분수가 치솟는다. 넓은 잔디광장엔 공을 차는 가족 단위 일행들이 보이고, 자연과학 놀이터와 물놀이장을 지나 관상조류원, 밀원식물원, 습생초지원 등 체험형 자연생태공원의 면모가 돋보인다. 군데군데 정자에서 잠시 쉬어가며 자연을 마음껏 즐길 만하다. 산을 향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능선과 산봉우리가 이어지고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하다. 데이트 장소로도 적당하고, 온 가족이 함께 편안한 쉼이 가능한 자연 공간이다. 만뢰산 자연생태공원은 사철 자연을 누릴 수 있다.
조용한 역사 속 산책, 김유신 태실과 길상사
만뢰산 자연생태공원에서 5분쯤 달리면 길가에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진천과 김유신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신라를 상징하는 명장이자 권세 높은 인물 김유신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하고 성장했다.
김유신이 태어날 때 나온 태를 보관한 태실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고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의 축조 방법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김유신이 태어난 진천 계양마을 일대는 생가와 유허비, 태실 등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주변에 탐스러운 수국이 절정을 넘기는 중이고, 고즈넉한 자연 속에서 호젓한 산책 코스로 최적이다.
부근에 궁도장인 화랑정과 김유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 길상사가 가깝다. 홍살문을 통과해서 오르는 길상사 가는 길 양옆으로 가로수가 즐비하다. 외삼문을 통과해 내삼문으로 가는 계단의 오래된 나무가 세월을 말해준다. 화려함의 절정인 겹벚꽃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기도 한다.
천년 세월의 농다리, 초평호 출렁다리 미르 309
요즘은 볼거리가 많이 알려졌고 새롭게 생겨난 것들이 늘어났지만 이전엔 진천을 알리는 것 중 하나가 농다리였다. 해마다 봄이면 진천군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행사로 ‘생거진천 농다리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투박한 돌을 쌓아 만든 다리가 천년 세월을 이어왔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 초 권신 임연(林衍)이 놓았다고 알려졌는데, 이런 이야기는 지방 씨족들 사이에 전해오는 설화다.
농다리는 충북 유형문화유산 제28호로 28칸의 교각에 길이 93.6m다. 널찍한 돌만으로 층층이 얹어 쌓았는데 홍수로 넘쳐나도 유실되지 않고 여전히 끄떡없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돌 사이 빈틈으로 물이 빠져나갈 길을 두었다. 이를테면 다리가 받는 압력을 줄이는 숨구멍이다. 살아보니 빈틈의 여유로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렇게 다시 확인한다. 교각의 간격이나 구조 등을 보면 과학을 넘는 선조들의 지혜에 놀랄 수밖에. 농다리 위를 걸으면서 발아래로 물 흐르는 게 훤히 보인다. 물소리를 들으며 천년의 세월과 교감하는 특별한 기분을 느끼는 신비로운 시간 여행이다.

농다리를 건너면 또 다른 새로운 즐길 거리가 기다린다. 농다리 저편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2024년 개통한 초평호 ‘미르 309’ 출렁다리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스릴 넘치는 풍광의 호수 위를 용이 가로지르는 듯한 모습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길이는 309m다. 농다리에서 시작해 미르숲과 미르 309 출렁다리, 주변의 야외 음악당, 초롱길, 하늘다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순환형 둘레길이다. 걷기에 따라 2시간 남짓 소요되는 트레킹이 부담스럽지 않다. 미르숲의 울창한 푸르름과 초평호의 청정한 블루가 머릿속을 개운하게 하는 힐링의 시간이다.
100년의 덕산양조장과 저수지의 사색
조금 남겨둔 시간이 있다면 덕산양조장을 들러보자. 예전에는 마을마다 양조장이 있었다. 노란 양은 주전자 가득 술을 받아 농사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던 시절, 덕산양조장은 그런 이야기를 품고 있다. 1930년에 지은 낡은 양조장은 허영만의 만화 ‘식객’ 중 막걸리 이야기의 배경지가 돼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100년 가까이 이어온 효모균이 스며든 덕산양조장의 은은한 향기와 술독 사이로 오래된 기운이 풀풀 난다. 그곳엔 지금도 여전히 술이 익어가고 있다.
진천은 소읍이지만 크고 작은 전시관이 많다. 백곡로 쪽으로 나가면 판화 미술관인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에서 한적한 전시 관람이 가능하다. 아름다운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종박물관은 백곡저수지와 역사테마공원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광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참숯박물관, 포석조명희문학관, 공예마을, 마차박물관, 배티성지 등 볼거리가 숱해서 빵빵한 문화 충전은 덤이다.
또한 여러 개의 저수지가 곳곳에 있다. 강태공들이 무념무상 ‘낚멍’의 망중한을 누리는 초평저수지엔 수상 리조트처럼 멋진 좌대가 호수 위로 여유롭게 떠 있다. 사계절 고요한 정취의 백곡저수지 너른 풍경 위 출렁다리를 건너면 역사테마공원으로 이어진다. 인공습지와 수생식물이 조성된 신척저수지는 요즘엔 연꽃으로 뒤덮인 연못 위 데크를 따라 생태탐방로를 산책하기 좋다. 여행 끝자락에 저수지를 마주하면 물 위에 비친 하늘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잔잔한 수면 위로 펼쳐진다. 정서적 충만함을 누리며 산책하듯 이어온 하루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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