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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역설④] 폭염 피하는 것도 노후의 능력이다

입력 2026-09-0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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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환경지표 상관계수 -0.82…치매 의료이용 5~9월이 한파 기간의 1.48~1.50배

(이미지=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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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부유해졌다. 그런데 그 성공은 노년의 삶 어디까지 도착했을까. ‘선진국의 역설’은 돈·일·관계·생활환경을 따라 한국인이 잘 늙어갈 수 있는 조건을 살펴본다. 마지막 질문은 환경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생활환경도 함께 나아질 것 같지만 한국의 숫자는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더구나 환경의 부담은 누구에게나 같은 크기로 돌아오지 않는다.

한국·일본·싱가포르의 경제성장과 삶의 질을 분석한 연구에서 한국은 유독 한 지표가 눈에 띄었다. 2010~2023년 1인당 GDP와 사회적 연대의 상관계수는 0.4836, 삶의 주도권은 0.3879였다. 두 관계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환경은 달랐다. 연구가 구성한 환경지표와 GDP의 상관계수는 -0.8221, p값은 0.0003이었다. 연구진은 한국에서 GDP와 환경지표 사이에 강하고 통계적으로 유의한 음의 관계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연구가 비교한 세 영역 가운데 GDP와 가장 분명하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은 환경이었다.

다만 이 숫자가 ‘경제성장이 환경을 악화시켰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분석기간도 2010~2023년으로, 한국이 가난한 나라에서 고소득국가로 성장한 전체 과정을 직접 관찰하지 않는다.

나라가 부유해지면 환경도 자연스럽게 좋아질까. OECD가 2026년 한국의 지난 30년을 돌아본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확인된다. 2021년 한국의 국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1인당 13.1톤이었다. OECD 평균은 9.2톤이다. 그런데 한국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과 탄소발자국은 2010년까지만 해도 OECD 평균보다 낮았다. 이후 위치가 뒤바뀌었다.

OECD는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의 성장과 늘어난 전력수요, 석탄발전 확대 등을 그 배경으로 짚었다.

국가 단위의 환경지표만으로는 노년의 삶이 잘 보이지 않는다. 폭염이 닥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기온에서도 누구는 에어컨을 켜고, 차를 타고 시원한 곳으로 이동한다. 반면 더위의 위험을 알아차리거나 스스로 피하는 일부터 어려운 사람도 있다.

치매 환자가 대표적이다. 2026년 8월 『보건복지포럼』에 실린 연구는 치매 환자가 폭염 때 위험을 인지하고 회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치매로 인한 시상하부 손상과 자율신경계 기능 저하는 체온조절 능력을 낮출 수 있다. 인지·언어기능 손상은 더위로 인한 어려움을 보호자에게 알리거나 적절한 도움을 찾는 데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구진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청구자료를 이용해 2014~2023년 의료이용을 분석했다. 5~9월을 연구상 ‘폭염 기간’, 12~2월을 ‘한파 기간’, 3~4월과 10~11월을 그 외 기간으로 구분했다. 치매 환자의 폭염 기간 연 1인당 의료이용은 2.76건이었다. 입·내원 일수는 17.30일, 총요양급여비용은 125만 6468원이었다. 세 지표 모두 한파 기간보다 1.48~1.50배 높았다.

(이미지=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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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같은 더위, 다른 회피 능력’

① 성장과 환경

2010~2023년 한국

GDP ↔ 환경지표 상관계수 -0.8221

p=0.0003

② OECD 평균을 넘어선 배출량

2021년 1인당 온실가스 배출

한국 13.1톤 / OECD 9.2톤

※ 2010년까지는 한국이 OECD 평균보다 낮았음

③ 치매 환자의 ‘폭염 기간’ 의료이용

연 1인당 2.76건

입·내원 17.30일

총요양급여비용 125만 6468원

→ 한파 기간의 1.48~1.50배

④ 폭염을 피하려면

위험 인지 / 냉방 / 이동 / 도움 / 접근 가능한 쉼터]

이 수치를 ‘폭염 때문에 치매 의료이용이 1.5배 늘었다’고 읽어서는 안 된다. 연구가 개인별 실제 기온 노출이나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의 의료이용을 추적한 것은 아니다. 5~9월 전체를 ‘폭염 기간’으로 묶어 다른 계절과 비교했다.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한 결과는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더 눈여겨볼 결과는 건강보장 유형에 따라 부담의 차이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조현병과 치매 모두 의료급여 수급자가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의료이용 건수와 입·내원 일수, 의료비용이 높았다. 연구진은 이 결과가 더운 시기의 정신질환 건강 부담이 사회경제적 취약집단에 집중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같은 날씨를 겪더라도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조건은 같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공공시설을 늘리면 해결될까. 2025년 『한국방재학회논문집』에 실린 연구는 2016~2022년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무더위쉼터와 온열환자 수의 관계를 분석했다. 전국 단위에서는 무더위쉼터 수와 온열환자 감소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계가 나타났다. 폭염일수와 노인인구는 반대로 온열환자 수 증가와 관련이 있었다.

특히 전국 분석에서는 노인과 독거노인이 평균보다 많은 지역에서 무더위쉼터와 온열환자 감소 사이의 관계가 더 크게 나타났다.

하지만 지역을 나누면 결과는 달라졌다. 도 지역에서는 무더위쉼터 수와 온열환자 감소 사이의 관계가 비교적 뚜렷했다. 반면 광역시와 시·군·구에서는 취약계층의 구성에 따라 관계의 크기와 통계적 유의성이 달라졌다. 연구진도 무더위쉼터가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결과를 보이지 않는다고 정리했다.

특히 취약계층이 많은 일부 지역에서는 무더위쉼터 수요가 크면서도 실제 이용에 어려움을 겪거나, 쉼터만으로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쉼터가 있다는 것과 폭염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치매가 있다면 장소를 찾고 이동하는 과정부터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보행이 어렵다면 가까운 거리도 멀어진다. 집에서 냉방을 유지하는 데 비용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결국 시설의 개수만큼 중요한 것이 접근성이다.

무더위쉼터 연구 역시 개인이 실제로 쉼터를 이용했는지, 집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 운영시간이나 냉방 수준은 어땠는지까지 추적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쉼터 이용 자체가 온열환자를 줄였다는 개인 단위 인과관계로 해석할 수는 없다. 연구가 보여준 것은 같은 시설이라도 지역과 취약계층의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폭염을 피할 수 있는 것도 노후의 능력’이라는 말은 노인 개인에게 더 잘 대처하라는 뜻도 아니다. 여기서 능력은 개인의 건강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냉방을 유지할 경제적 여유, 스스로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상태, 이동수단, 어려울 때 부를 사람, 실제로 갈 수 있는 시설이 함께 있어야 한다.

‘선진국의 역설’이 네 편에서 던진 질문도 결국 하나였다. 한국의 성장은 컸다. 그러나 그 성과를 한 사람이 늙어가는 삶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잘 늙는 사회를 가르는 질문은 그래서 이것이다. ‘선진국의 인프라가 필요해졌을 때, 노인이 그 인프라를 실제로 쓸 수 있는가.’

[이 기사에 활용한 주요 자료]

Fernanda Ortega·Dennis J. Snower, 「The Dark Side of Escaping the Middle-Income Trap: A SAGE Study of Asian High-Income Countries」, INET Oxford Working Paper 2024-09

→ 2010~2023년 한국의 GDP와 사회적 연대·삶의 주도권·환경지표의 관계를 비교. 환경지표에서 강하고 통계적으로 유의한 음의 상관관계를 확인.

OECD, Inclusive and Sustainable Well-being in Korea: 30 Years of OECD Membership and Future Policy Opportunities, 2026

→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과 탄소발자국, 에너지 구조 등 장기 환경 변화를 OECD 국가와 비교.

최지희, 「기후위기에 따른 정신건강 부담: 조현병과 치매를 중심으로」, 『보건복지포럼』 2026년 8월호

→ 2014~2023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청구자료를 토대로 5~9월 치매·조현병 의료이용과 건강보장 유형별 차이를 분석.

김선인·이달별, 「지방자치단체의 폭염 대응 시설이 온열환자 저감에 미치는 영향: 무더위쉼터를 중심으로」, 『한국방재학회논문집』, 2025

→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를 분석해 무더위쉼터와 온열환자 수의 관계, 지역과 취약계층에 따른 차이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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