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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46만 구독자 잡지 ‘하루메쿠’의 인기비결

입력 2026-04-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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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니어 라이프] 시니어 여성의 마음을 읽다

일본의 시니어 여성 시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바로 여성지 ‘하루메쿠(ハルメク)’다. 서점 판매 없이 정기 구독만으로 월 46만 2000부(일본 ABC협회 발행사 리포트, 2025년 1~6월)를 유지하며 일본 잡지 발행 부수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매체다. 하루메쿠는 하나의 ‘시니어 여성 생태계’로 평가받는다. 잡지에서 출발해 디지털 콘텐츠, 온라인 쇼핑, 오프라인 매장까지 확장하며 미디어와 커머스를 결합한 종합 플랫폼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 생태계의 중심에는 ‘하루메쿠 생활방식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를 이끄는 인물이 우메즈 유키에(梅津順江) 소장이다.



우메즈 유키에 소장은 매년 약 900명의 시니어 여성을 직접 인터뷰하며 시니어 시장의 변화를 분석해온 전문가다. 소비 트렌드, 삶과 가치관, 솔직한 속마음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방식으로 인사이트를 축적해왔다.

이번 인터뷰는 ‘하루메쿠는 어떻게 시니어 여성의 마음을 이렇듯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취재를 마치고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하루메쿠의 성공은 감각이나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철저한 관찰과 경청, 그리고 시니어 여성을 소비자가 아니라 ‘삶의 주체이자 인생의 주인공’으로 존중하는 태도. 바로 그 점이 일본 시니어 여성들이 하루메쿠를 선택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


하루메쿠의 V자 회복

하루메쿠는 1996년, 당시로서는 드물게 50대 이상 여성을 주요 독자로 설정한 건강·생활 정보지 ‘이키이키(いきいき, 생기 있게)’로 출발했다. 고령화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시니어 여성을 독자층으로 설정한 점은 당시 일본 출판 시장에서도 이례적인 시도였다.

2006년에는 월 발행 부수 43만 부를 기록하며 시니어 여성지 시장의 대표 매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09년 자금난과 함께 독자 수가 급감하며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취임한 인물이 미야자와 다카오(宮澤孝夫) 사장이다.

당시 조직 내부에는 잡지 판매 부진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돼 있었고, 직원들 역시 지시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조직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미야자와 사장은 위기의 원인을 단순한 판매 부진이 아니라 조직 체질과 전략의 문제로 판단했다.

그가 내린 처방은 ‘고객 중심 경영’이었다. 2014년 그는 독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니어 여성의 삶과 소비 패턴을 분석하는 ‘생활방식연구소(生きかた上手研究所)’를 설립하며 고객 데이터 중심 전략을 본격화했다.

이어 2016년에는 또 하나의 큰 결단을 내린다. 바로 잡지 이름 변경이다. ‘이키이키’라는 이름이 ‘노인 잡지’ 이미지를 강하게 연상시킨다는 판단 아래, ‘봄기운이 감돌다’는 뜻의 ‘하루메쿠(ハルメク)’로 브랜드를 전면 교체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사내 반발은 거셌다. 오랫동안 사용해온 이름에 대한 애착과 독자 이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직원들이 눈물을 보이며 반대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하루메쿠’라는 이름은 기존의 ‘노인 잡지’ 이미지를 벗고 시니어 여성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설문조사, 독자 엽서, 전화 인터뷰, 고객 방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독자의 숨은 욕구와 심리를 집요하게 분석한 결과, 정기 구독자 수는 5년 만에 약 세 배로 증가했다.

그리고 2023년 3월, 하루메쿠는 도쿄증권거래소 그로스 시장 상장에 성공하며 완벽한 V자 회복을 증명했다. 이 사례는 고령화를 ‘시장 축소’로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루메쿠’ 2026년 2월호 표지.
▲‘하루메쿠’ 2026년 2월호 표지.


변하지 않는 것, 그리고 분명히 변한 것

우메즈 소장에게 과거와 현재의 시니어 여성을 비교했을 때 무엇이 변하지 않았고, 또 무엇이 달라졌는지 물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자립 욕구입니다. 끝까지 자기 발로 걷고 싶고, 가족이나 자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세대와 시대를 초월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가치입니다.”

가능한 한 오래 스스로 일상을 관리하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요양이나 돌봄을 ‘언젠가 닥칠 일’로 미뤄두기보다, ‘지금’을 선택하는 삶의 태도로 바뀌었다.

최근 하루메쿠 독자들 사이에서는 ‘이마카쓰(今カツ)’와 ‘고자아이 소비(ご自愛消費)’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이마카쓰는 ‘건강할 때 지금을 즐기는 활동’을 의미하고, 고자아이 소비는 ‘자기 자신을 돌보고 위로하기 위한 소비’를 뜻한다.

이러한 흐름 속 고급 크루즈 여행이나 12만 엔(약 110만 원) 넘는 오페라 관람권, 스모 경기 관람 티켓 등이 빠르게 매진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몸과 머리가 움직이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경험에 시간과 돈을 쓰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간 감각 자체가 ‘미래 대비형’에서 ‘현재 충실형’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하루메쿠는 이러한 미세한 변화를 가장 먼저 포착한 매체다.


3000장의 독자 의견 엽서

하루메쿠의 독자는 비교적 명확하다. 호기심 많고 건강과 배움에 적극적인 액티브 시니어 여성이다. 건강, 요리, 미용, 패션, 재테크, 스마트폰 활용, 생활 정보 등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정보’를 고품질 콘텐츠로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점 판매 없이 정기 구독만으로 운영되는 매체지만, 고객 이해와 관계 형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어 독자 충성도는 매우 높다. 하루메쿠의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한 콘텐츠 판매가 아니라 독자와의 관계 위에 구축된 구조다.

이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의견 엽서’다. 매달 약 3000장의 의견 엽서가 하루메쿠 편집부로 도착한다. 기사 평가부터 연금 생활에 대한 불안, 가족관계, 개인적인 고민까지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엽서를 데이터로만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칩니다. 사소한 중얼거림 속에 진짜 인사이트가 숨어 있죠.”

연구소는 엽서를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신호(Signal)’로 읽는다. 말로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감정, 사회 변화의 전조, 개인의 불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기획의 씨앗을 발견한다. 특히 시니어 남성과 여성의 관심사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남성은 묘지나 장례, 사후 준비에 관심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여성은 ‘혼자가 된 이후의 삶’, 즉 생전의 생활을 훨씬 구체적으로 그립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여성 독자들 사이에서 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종활(終活)’에 대한 피로감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종활 자체가 ‘이제 좀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꼭 필요한 준비만 해두고, 오히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루메쿠 독자로부터 배달된 엽서.
▲하루메쿠 독자로부터 배달된 엽서.


독자 집에서 발견한 생활의 힌트

하루메쿠 생활방식연구소는 매년 200회 이상 독자와 직접 만난다. 그룹 인터뷰, 시식회, 워크숍, 세미나, 강연회 등 방식도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조사 방식은 연구원이 독자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다.

우메즈 소장은 실제 관찰에서 탄생한 대표 사례로 ‘이동식 수납장’을 소개했다.

“연구원들이 집을 방문해 생활을 관찰해보니, 남성은 거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반면 여성은 하루 대부분을 식탁에서 보내더군요. 식탁 위에는 신문, 잡지, 조미료, 전단지, 리모컨, 건강보조식품 등 ‘지금 쓰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있었죠. 정리정돈이 안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쓰는 물건들이 모인 공간’인 셈입니다.”

이 관찰로 탄생한 이동식 수납장은 시니어 여성의 일상을 편하게 해주는 히트 상품이 됐다. 생활을 바꾼 것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생활을 이해하려는 시선이었다.

이처럼 하루메쿠의 기획 과정에는 독자 참여도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하루메쿠에는 단순한 독자를 넘어 조사와 기획에 참여하는 ‘하루토모(ハルトモ, 하루메쿠의 친구)’라는 커뮤니티가 있다.

“가입 계기의 약 90%가 ‘나 자신을 충분히 발현하고 싶다’, ‘내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응답합니다.”

하루토모로 활동하는 독자들은 대부분 건강하고 지식과 경험도 풍부하다. 실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하루메쿠의 젊은 직원들과 교류하고, 상품 개발을 고민하는 기업 관계자들과도 의견을 나눈다. 일부 참여자는 잡지 화보나 광고에 등장하는 ‘독자 모델’로도 활동한다.

“‘카메라 앞에 서면, 나도 아직 괜찮네’라는 감각이 생깁니다. 그 감각이 자신감으로 이어지죠.”

하루메쿠는 하나의 기획을 준비하는 데 6개월 이상 시간을 들이기도 한다. ‘팔릴 것 같아서’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콘텐츠인지 충분히 검증한 뒤에야 세상에 내놓는다. 결국 하루메쿠의 경쟁력은 화려한 마케팅이 아니라 독자의 삶을 깊이 이해하려는 집요한 태도에서 나온다.


AI 시대, 하루메쿠가 말하는 시니어

“엊그제 69세 하루토모 한 분이 ‘채피에게 물어봤다’고 하더군요.”

우메즈 소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가 말한 ‘채피’는 바로 챗GPT였다.

“시니어 여성들은 AI를 낯선 기술이라기보다 내 기억을 보완해주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하루메쿠에는 AI 활용 강좌를 열어달라는 요청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기술을 두려워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맞게 길들이려는 태도. 젊은 세대보다 더 유연해 보였다.

인터뷰 마지막, 지금을 살아가는 시니어 여성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자 우메즈 소장은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일일일생(一日一生).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이 결국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니까요.”

이 사례는 여전히 시니어를 보호와 지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회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시니어 여성을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자이자 삶의 주체로 바라봤다는 점이다.

둘째, 광고 중심이 아닌 콘텐츠 기반 구독 모델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셋째, 노후 대비나 복지 담론을 넘어 생활 밀착형 관심사와 경험 중심의 콘텐츠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하루메쿠 생활방식연구소의 관점이 한국 사회에서도 공유될 때, 초고령사회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가능성으로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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