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주거·사회 참여 아우르는 미래 비전 제시 필요
한국은 유례 없이 빠른 고령화 속도로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건강하고 품위 있는 노후를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반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린 ‘제1회 서울시니어스포럼’은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분야별 문제점과 대안에 대한 통합 논의가 이어졌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장수를 위한 해법으로 면역체계부터 거주환경, 사회참여 기반까지 다층적 시스템의 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건강은 장수의 출발점이다. 특히 면역력이 떨어지는 고령자는 감염병에 취약한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백신 접종의 필요성과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한 과학적 접근이 요구된다.
면역학자 발리 폴렌드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수는 “고령자는 젊은층에 비해 백신 접종 후 항체 반응이 현저히 낮다”고 지적했다. 유전자 발현 저하, 만성 염증, 면역세포 기능 약화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그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면역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고령층의 특성을 고려해, 염증 억제와 면역세포 조절 등 통합적 전략을 반영한 맞춤형 백신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건강한 노후를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조건은 삶의 터전이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는 장수 시대에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고령자가 시설이 아닌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여생을 보내는 개념을 말한다.
옌스 당샤트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교 명예교수는 "생활 환경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기후와 지역 구조, 이동성 등 복합적인 요인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짚었다. 또한 초고령자는 시설보다 이웃과의 소통, 일상적 관계망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당샤트 교수는 “환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개인의 특성을 형성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며 “그간 우리는 환경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봐 왔다. 고령사회는 개인이 아닌 제도, 기술, 지역사회가 함께 설계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노년기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도 중요하다. 미래학자인 호르스트 오파쇼브스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명예교수는 영상 인터뷰를 통해 “100세 시대의 노년은 삶의 종결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며, 교육-직업-은퇴로 이어지는 전통적 생애주기 모델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는 중장년층을 ‘삶의 새로운 주체’로 정의하며, 세대 간 교류와 평생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영란 강남대학교 시니어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초고령사회 대응은 단일 정책이나 영역의 개혁으로는 불가능하다”며 “건강 증진에서부터 주거환경, 교육, 커뮤니티 설계까지 전 생애에 걸친 통합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기술과 제도가 어우러진 ‘장수 설계(long-life design)’가 사회적 어젠다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