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 교수의 조언, ‘짠내 나는 생존 소비’가 바꾼 경제 지형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경제성장은 더딘 요즘.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소비에 집착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에 대해 연구하는 이준영 상명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를 만나 먹고사는 생존 소비로 인해 바뀌는 소비 패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존 소비
저성장·고물가 현상이 지속되면서 필수 생활비만 지출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를 생존에 필요한 곳에만 돈을 쓴다는 의미로 ‘생존 소비’라 한다. 경제적 불안정성이나 위기 상황, 또는 개인의 생존과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소비로 주로 식료품, 의약품, 주거,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 등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항목에 집중한다. 이러한 소비 패턴은 경기침체, 실업 증가, 자연재해, 글로벌 팬데믹 등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의료, 교육, 주거와 같은 기본적 서비스에 대한 공공 지원이 충분하지 않아 개인이 부담하면서 생존 소비에 더욱 집중되고 있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생존 소비는 일종의 서바이벌 소비로 위기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는 전략”이라면서 “소득 감소와 물가상승으로 인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며 필수 생활비 외 지출을 최소화하고 있는 65세 이상 고령층이 생존 소비의 핵심 집단이다. 이들의 생존 소비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필수만 남긴 생존 소비의 그늘
외식, 문화생활, 여가 활동 등 선택적 소비가 줄어들고 생존 소비에 집중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불안정성이 지속되면서 가계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소득 대비 필수 생활비 비중이 증가하면서 많은 사람이 사치재 소비를 포기하고, 기본적인 필요 충족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의 우선순위가 변하고, 생존 소비가 중요한 소비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준영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수록 소비자가 신중하게 지갑을 열게 되므로, 거시적 경제 관점에서 바라볼 때 산업 전반에 걸쳐 고용 불확실성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소비가 위축되면 일부 산업에서 매출 감소가 이어지고,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기업의 매출 감소는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위험도 높죠. 결국 생존 소비에 집중되면서 전체적인 소비 축소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회 안정과 소비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생존 소비로 인한 구매 패턴의 변화는 개인의 생존 전략이자 사회적 신호로 바라봐야 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만든 新아나바다
생존 소비는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가성비 소비라는 점에서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바꾸고 있다. 반품·리퍼 상품을 구매하고,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선호하거나, 공동구매를 통해 가성 있게 구매하는 방식을 모색하고, 초저가 상품을 찾아다니는 등 신(新)아나바다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중고 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의 발전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수십 년간 불황형 소비가 정착한 일본과 비슷한 양상이다.
이 교수는 “창고형 할인마트가 성장세를 보이며 소비자 사이에서 폐업 직전인 떨이 상품을 구매하는 올빼미 쇼핑이 다시 유행하는 등 실속 소비 형태가 확대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생존 소비 패턴은 단순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아닌 경제 상황과 개인 가치관의 변화가 결합된 결과”라고 덧붙였다.
또한 생존 소비의 확산과 더불어 자동차, 의류, 가전제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유경제’가 주목받고 있다. 카 셰어링, 의류 렌털 서비스, 전동 킥보드 공유 등은 최소 비용으로 필요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는 개인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환경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를 제공하며 생존 소비와 맞물려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아끼고 아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생성
소득이 줄어드는 고령층의 경우 물가상승 현상이 지속되면서 생존 소비 행태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일반 중산층에서도 가성비 중심의 생존 소비는 저소득층에서 트리클업(Trickle up, 서민층은 각종 부담만 지고 질적 이득은 상류층이 독식한다는 경제용어)이 발생할 수 있다.
그는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소비 양극화가 심해지고, 가성비 소비와 가심비 소비의 격차인 트리클업 현상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라며 “결국 기존 소비 패턴에 변화를 일으키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생존 소비는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가치 소비’와 ‘합리적 소비’로 진화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제품의 가격뿐 아니라 품질과 내구성, 지속 가능성까지 고려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기업으로 하여금 단순히 저렴한 제품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용 대비 높은 가치를 전달하는 전략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필수 생활품의 가격 인하, 지속 가능한 제품 개발, 취약계층을 위한 할인 프로그램 등을 통해 기업이 생존 소비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불황 극복을 넘어 장기적인 기업 가치 창출과 고객 신뢰 확보 전략이 될 수 있다.
생존 소비의 확산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중심의 기존 경제 시스템은 점차 무너지고, 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와 소규모 생산 및 판매가 중심이 되는 ‘스몰 이코노미’가 부상하고 있다. 이는 한정된 자원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경제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생존 소비를 넘어서는 정책적 대안 필요
이 교수는 “생존 소비의 확산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경제 전반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생존 소비 집중 현상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적 문제다.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현상이 아니라,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 안전망의 한계가 맞물린 결과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용 불안과 노후 소득 공백은 생존 소비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는 청년층과 고령층 모두에게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경제적 불안정을 해소하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합니다. 수입이 단절되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잖아요. 청년들은 노후 자금을 모은다고 소비를 줄이고, 은퇴 후엔 수입이 없어 소비를 줄이니 악순환이 되는 겁니다. 결국 노동시장 안정화와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문제인 셈이죠. 궁극적으로 생존 소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개인의 생존과 사회적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일입니다. 정부, 기업, 사회가 협력해 경제적 불확실성을 줄이고 필수 소비에 대한 부담을 완화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사회의 균형과 포용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