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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흔드는 말 한마디

기사입력 2021-02-01 15:12

[어르시니어]

나이를 먹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소심해지고 쩨쩨해지는 것 같다. 나는 어언 76년이나 풍진세상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나의 쪼잔함과 졸렬함이 아주 실망스러운건 아니다. 아주 작은 자부심과 기쁨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알아먹기 쉽게 예를 들어보겠다. 우선 나는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상대의 입에서 버릇처럼 튀어나오는 ‘솔직히 말해서’라는 어휘를 끔찍이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럼 ‘솔직히 말해서’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의 얘기는 솔직한 얘기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쩨쩨한 의구심이다.

나이가 나보다 많은 사람한테서 그런 어휘가 나왔다면 하는 수 없이 어물쩍 넘어가지만 내 나이 또래나 밑의 사람이 그 어휘를 썼을 때는 내가 유독 싫어하는 말이니 나와 얘기할 때는 그 단어를 쓰지 말거나 다른 어휘나 용어를 구사해주길 특별히 부탁하곤 한다.

지금까지는 이 치사스런 요구가 그런대로 잘 먹혀온 것 같다. 만약 후배가 그걸 어기는 경우, 귀퉁배기를 가격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귀퉁배기를 갈기며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 시캬, 이건 영남이 형이 네 평생에 건네준 선물이다. 죽을 때까지 ‘솔직히 말해서’라는 말은 쓰지 마. 안 쓸수록 좋은 거다.”

내가 이렇게 심하게 주의를 주는 이유는 경험상 그 어휘가 주로 솔직하지 않은 사람 또는 사기꾼들이 특별히 주문처럼 써먹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음엔 나의 꼰대 같은 찌질한 짓거리가 무엇일지 솔직히 말해서(?) 걱정스럽다.

나이 들어가면서 내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또 있다. 딸에 관한 얘기다. 내 딸은 유난히 아버지의 입을 통해 자신이 거론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행여 인터뷰나 연예 프로그램에서 자연스럽게 슬쩍 얘기가 나와도 생난리 법석이다.

아예 자기 얘기를 하지 말아달라는 게 간절한 요구사항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치매 초기 상황에 들어선 이 아빠는 딸이 참으로 기특하고 예쁘게 보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딸 자랑이 흘러나오는 걸 주체할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심하게 구박을 받고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고 싹싹 빌며 넘어가곤 한다. 살금살금 위기에서 빠져나오기는 하지만, 그러나 글쎄 앞으로 그런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다. 딸 자랑은 노인이 되어가면서 누리는 쓸쓸한 기쁨이라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딸한테 맞아 죽어도 할 말은 해야겠다. 우리 부녀 사이엔 구속이라는 언어나 어휘가 없다. 언제 들고 나는지 쌍방이 모르는 채 일상이 흘러간다. 그런 와중에도 아빠 사랑과 딸 사랑은 세상 어느 부녀 못지않게 넉넉히 유지해가면서 말이다.

크게 자랑할 만한 얘기는 아니지만 나는 이따금씩 룸살롱이라는 곳을 다녀오곤 한다. 많은 사람이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딸, 오늘은 아빠와 함께 룸살롱에 갈까?” 하고 제의를 하기도 한다. 언젠가 덤덤하게 내뱉는 딸의 한마디가 매우 인상적으로 들려온 적이 있다. “오늘 저녁 아빠 룸살롱 갔다 올게” 하자 이렇게 받는 것이었다.

“아빠, 우리나라에서 룸살롱에 간다고 딸한테 말하는 사람은 아빠밖에 없을 거야.” 와, 역시 내 딸이다. 내 딸답다. 전국의 딸 가진 아빠들아, 이토록 이쁘게 통 큰 딸 가진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구요.

나이 듦이나 소심함 혹은 쩨쩨함이 다 수치스럽거나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때때로 그것이 총체적으로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가령 나는 5년간의 긴 미술대작 사건을 마치고 기자들한테 속 좁은 내 마음을 이렇게 드러냈다. “국가가 5년간 국비로 평범한 미술 애호가를 정식 화가로 격상시켜주었다.” 그런데 이 말이 어느 주요 일간지에서 2020년 한 해의 중요한 말로 언급되기도 했다.

또 있다. 나는 긴 재판의 끝 장면, 소위 조영남 미술대작 사건 전국 공청회의 마지막 순간 최후의 진술을 부여받았는데 어쩌고저쩌고 진술을 쏟아낸 다음 이런 식으로 끝을 맺었다.

“대법관님, 옛 어르신들 말씀에 화투를 가지고 놀면 패가망신한다 그랬는데 제가 너무 오래 화투를 가지고 놀았나봅니다.”

참으로 노인스러움과 소심함의 극치였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보다도 더 그윽한 행복감에 젖어 하루하루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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