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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파치 농산물

기사입력 2020-11-27 09:08

시골에서 사과농원을 하는 사촌 여동생이 파치 사과를 한 박스 보내왔다. 파치(破치)란 부서지거나 흠이 나서 못 쓰게 된 물건을 말하는데 파치 농산물은 흠집이 있는 농산물이다. 농부들은 최고 품질의 농산물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불량 농산물을 안 나오게 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파치로 불리는 불량 농산물은 늘 만들어진다.

(사진 조왕래 시니어기자)
(사진 조왕래 시니어기자)

자랄 때 우리 집은 과수원과 논농사, 밭농사를 했다. 좋은 농산물은 시장에 내다 팔고 벌레 먹고 흠이 있는 농산물은 식구들이 먹었다. 까치가 파먹은 과일, 비바람에 떨어져 멍이 든 과일, 한쪽 귀퉁이를 벌레가 파먹거나 썩은 과일도 있었다. 벌레가 먹은 배추, 굼벵이가 파먹은 감자, 희나리 고추, 타작 때 도리깨에 맞아 깨진 콩들이 다 파치 농산물이다. 이런 농산물은 버리기에는 아깝다. 그래서 헐값에 처분하거나 농부 가족들이 먹고 그래도 남으면 가축의 차지였다.

예전에는 농촌에 식구가 많아 사과 한 박스 분량이면 하루에 뚝딱 먹어치웠지만 요즘의 농촌에는 먹을 사람도 없고 가축도 없다. 도시의 소비자는 현미경보다 더한 매의 눈을 하고 파치 농산물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결국 버리는 수밖에 없다. 아깝다. 비바람과 혹독한 추위와 더위를 함께 견디며 애정을 쏟은 농산물은 마치 자식과 같다. 버리기에는 선뜻 농부의 손이 나가지 않는다. 흠집은 있어도 그 부분만 도려내면 멀쩡하게 먹을 수 있는데…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만이 아는 애잔함이다.

여동생의 그런 마음을 아는 나는 고맙게 받는다. 받는 즉시 사과 박스를 열어 선별 작업을 한다. 일부가 썩은 놈을 제일 먼저 골라 그 부분을 도려내고 당장 먹는다. 멍이 든 놈은 냉장고에 채워 넣는다. 냉장고가 꽉 차서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으면 못생겼지만 튼튼한 놈을 골라 바깥 베란다에 햇볕만 가리고 둔다. 그리고 몇 푼의 돈을 파치 농산물 값으로 동생 통장에 넣어준다. 돈을 받은 동생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온다.

“아니 오빠! 내가 판 것도 아니고 이거 정품도 아닌데 돈을 주면 어떡해!”

“파치라 해도 맛만 좋더라! 농사짓느라 애썼다. 그냥 받아둬라.”

“오빠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 담에는 오빠한테 파치 사과 안 보낼 거야!”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나는 이런 파치 사과 맛을 잘 알지. 내년에도 꼭 보내라!”

여동생은 참기름을 다시 보내주면서 돈은 제발 넣지 말라고 한다.

파치 농산물은 내년에도 생길 것이다. 여동생은 파치 농산물 처분을 위해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또 내게 보내줄 것이다. 그 마음을 아는 나는 또 얼마간의 돈을 보내주고 동생은 파치 농산물을 팔았다는 고마움과 미안함에 다른 농산물을 또 보내줄 것이다. 이런 게 바로 마음 통하는 사람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사는 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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