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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국수와 파스타

기사입력 2020-10-16 08:54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면 종류의 음식은 멸치국수가 단연 으뜸이다. 멸치국수는 오랫동안 나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즐겨온 음식 중 하나다. 오죽하면 잔치국수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예전에는 잔치가 열리면 꼭 먹던 음식이다. 요즘은 멸치국수 대신 갈비탕이나 뷔페식이 잔치 음식을 대신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잔치국수가 대표 음식이었다. 시골 잔치 때는 돼지도 한 마리씩 잡아 한 접시 가득 상에 올리곤 했지만 주 메뉴는 역시 멸치국수였다. 그만큼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최고의 음식이다.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코로나19로 활동이 제한된 요즘, 우리 가족은 가끔 특식으로 한 가지씩 음식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며칠 전 아들이 멸치국수를 하겠다고 나섰다. 통멸치를 다시마와 무와 함께 넣고 국물을 우려내는 과정부터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국수 위에 얹을 고명을 만드느라 애호박, 양파, 표고버섯, 당근도 다듬고 썰어 준비했다. 숙달이 안 된 탓도 있겠지만 멸치국수 만드는 과정이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인터넷을 뒤져가며 한 시간을 쩔쩔매고 난 후에야 멸치국수를 식탁에 올렸다. 요리 과정을 지켜보니 시중에서 4000원 전후의 가격을 받는 음식치고는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 놀랐다. 아내가 가끔 해줄 때 쉬운 요리라 생각하고 먹었는데 결코 간단한 요리가 아니었다. 그 노력과 맛과 가격을 보면 가성비 최고의 음식임에 틀림없다.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오늘은 딸이 이탈리아 음식인 파스타를 해주겠다며 재료를 사 들고 왔다. 파스타 만드는 과정도 간단하지는 않았다. 멸치국수 만들듯 나름의 재료와 준비가 필요하다. 꽤 시간을 들여 만든 파스타는 역시 별미였다. 같은 면 종류의 음식이지만 그 맛은 사뭇 달랐다. 그런데 내 입맛에 썩 맞지 않았다. 멸치국수는 면발이 쫄깃하고 시원한 국물이 술술 넘어가는데 파스타는 왠지 뻑뻑한 식감이다. 파스타 요리의 나라 이탈리아에 갔을 때도 겨우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나라의 특별한 음식이니까 호기심으로 먹어보긴 했지만 영 당기는 맛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면 몰라도 스스로 찾아서 먹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두 음식을 먹으며 의문이 떠올랐다. 음식 가격의 차이가 너무 나는 것이다. 멸치국수는 대부분 4000원이면 먹을 수 있다. 비빔국수도 5000원대다. 그런데 파스타는 최근에 가격이 좀 내렸다는데도 7000원대가 대부분이다. 분위기 있는 음식점에서 먹으면 1만 원을 훨씬 넘어 1만5000원대라고 한다. 멸치국수에 비해 서너 배 정도 비싸다. 뭐가 이런 차이를 갖게 한 걸까?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두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보니 가격 차이가 날 만큼 파스타에 특별히 별난 게 들어가는 것 같지도 않다. 재료비에서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개인마다 음식 취향이 다르겠지만, 나는 파스타의 대단한 맛을 느끼지 못하겠다. 옛 맛에 길들여진 때문인지 멸치국수가 훨씬 더 맛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의 입맛은 다를 수 있다. 그래도, 아무리 그걸 감안한다 해도 몇 배의 가격 차이가 날 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멸치국수를 값싸게 먹을 때마다 왠지 개운하지 않다. 우리 국수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멸치국수가 해외로 나가면 파스타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대우를 못 받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한국 음식이 세계화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어 보인다. 요즘 소비자들은 맛도 따지지만 분위기를 더 중요시한다. 기꺼이 돈을 더 주고서라도 고급 음식점을 찾는다. 커피값도 값싼 커피부터 값비싼 커피까지 천차만별이지 않은가. 경제적 논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소비자의 지갑을 기꺼이 열게 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맛, 가격, 위생, 환경, 분위기? 소비자의 니즈를 좇아가는 게 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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