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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대수명·건강수명 격차, 세계 최고 수준”

입력 2026-11-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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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유럽 53개국, 고령화ㆍAI 이정표 발표… “수명 연장 넘어 건강하게 늙어가야”

수명은 늘었지만 병치레하는 노년은 길어졌고, 병원 진료실에는 법규보다 인공지능(AI)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인구 고령화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유럽과 중앙아시아 53개국이 공동 해법을 내놓았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지역사무소는 지난달 29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폐막한 제76차 지역위원회에서 53개 회원국이 ‘건강한 노화 전략(2026~2030)’과 ‘보건의료 분야 AI 실행 로드맵’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고 밝혔다.

현재 유럽의 고령화는 유례없는 속도다. 2024년 23.9%였던 60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50년까지 50% 급증하고, 85세 이상 초고령 인구는 두 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삶의 질이다. 유럽은 60세 기준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격차가 5.2년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살지만 전체 생애 중 건강한 기간의 비율(81.3%)이 남성(83.5%)보다 낮고, 낮은 연금과 과중한 가족 돌봄 부담 탓에 노년기 빈곤과 사회적 고립에 더 취약한 실정이다.

이에 회원국들은 약 2년간 정부와 학계, 노년층 등 3000여 명의 의견을 수렴해 ‘노화는 삶이다(Ageing is living)’라는 새 전략을 수립했다. 당장 돌봄이 필요한 현 노년층의 기능적 능력과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미래 세대가 건강하게 나이 들도록 생애 전반에 걸쳐 질병 예방에 선제 투자하는 ‘투트랙’ 접근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는 일차보건의료를 중심으로 신체·정신·뇌 건강을 통합 관리해 치매나 근골격계 질환 등 기능 저하를 조기에 막고, 질병 치료 위주였던 의료 체계를 예방·재활·장기요양·완화의료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람 중심’ 돌봄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특히 가족 등 비공식 돌봄 제공자의 처우와 심리적 지원을 강화하고 농어촌 등 취약 지역의 재택 돌봄 접근성을 높인다. 또한 노인 10명 중 1명이 외로움을 호소하는 현실을 감안해 주거·교통·디지털 장벽을 낮추고, 진료나 요양 서비스 자격을 결정할 때 단순한 ‘주민등록상 나이’가 아니라 개인의 ‘신체·인지적 기능 수준’을 기준으로 삼도록 의료 지침을 뜯어고쳐 연령 차별을 없애기로 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고령화 전담 부처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고령화를 불가피한 비용 부담이 아닌 ‘웰빙 경제의 전략적 자산’으로 삼아 예방 중심의 재정 투자를 늘릴 방침이다.

나타샤 아조파르디-무스카트 WHO 유럽 보건시스템 국장은 “노인은 사회의 부담이 아니라 해법의 일부”라며 “노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평생에 걸쳐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제도보다 앞서가는 의료 AI에 안전망을 씌우는 첫 지역 로드맵도 함께 통과됐다. WHO 유럽에 따르면 역내 국가의 약 3분의 2가 이미 질병 진단에 AI를 쓰고 절반은 대화형 AI를 도입했지만, 보건의료 전공 학생과 현직 의료진에게 AI 교육을 하는 국가는 각각 5곳 중 1곳과 4곳 중 1곳에 불과하다. 관련 법률을 점검한 곳은 절반에 못 미치고 윤리 지침이 없는 국가도 40%에 달하며, 보건 특화 AI 전략을 갖춘 나라는 8%뿐이다. 회원국들은 AI 도구를 확대 도입하기 전에 안전성과 유효성을 철저히 검증하고, 의료 사고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법적 제도와 의료진 교육 체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회원국들은 이와 함께 역내 사망 원인의 90%를 차지하는 심혈관질환·암 등 만성질환을 줄이기 위한 10개년 계획(2028~2037)과 지역사회 중심의 새 정신건강 전략 수립에도 착수했다. 초안은 내년 10월 공개된다.

코린 카푸아노 WHO 유럽 직무대행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결정이 정치·경제·의회 등 보건 분야 바깥에서 이뤄지는 만큼 과학적 근거가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WHO 유럽은 전 회원국의 노화 지표를 성별·연령별로 추적하는 대시보드를 즉각 가동하고, 2029년 중간평가를 통해 AI 로드맵 이행 성과를 점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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