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 쏟아붓는다는 ‘돌봄 AI 대전환’… 현장은 ‘인증 늪’에 발 묶여 ‘분통’

지난달 2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K-에이지테크(AgeTech) 포럼’에서 은성호 보건복지부 인구·사회서비스정책실장은 2026년부터 2031년까지 약 4000억 원 규모의 직·간접 투자를 단행해 ‘복지·돌봄 AI 대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의 복지용구 신속 등재를 포함해 대대적인 제도 개선을 약속하며 업계의 기대감을 높였다. 그렇다면 실제 기업들이 체감하는 현장의 온도는 어떨까?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과 달리, 일선 현장에서는 경직된 복지용구 등재 제도와 과도한 인증 규제에 손발이 묶여 있다며 기업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달 30일 성남시 분당구 국립국제교육원에서는 성남시니어산업혁신센터 주최로 ‘시니어 헬스케어(의료기기) 전주기 상담 자문회의’가 열렸다. 시니어산업 혁신얼라이언스 및 관련 기업 약 30개 사가 참석한 이날 행사는 고령친화·의료기기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 시험·인증(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복지용구 등록(국민건강보험공단) 등 3개 분야 전문가가 현황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이날 기업들의 문제 제기는 단순히 인증 절차가 까다롭다는 불만에 그치지 않았다. 신기술을 개발해도 기존 등재 제품에 맞춰 기능을 줄여야 하고, 제품을 직접 설계하고도 제조·수입 방식에 따라 신청자격부터 불분명해진다는 지적이었다. 기업들은 정부가 강조하는 기술 혁신과 실제 복지용구 시장의 진입 조건 사이에 간극이 크다고 호소했다.
“기능 많아지면 인증 의무 늘어나 고도화 어려워”
스마트 기저귀 개발 업체의 사례는 이런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배뇨 감지는 물론 배뇨량 측정과 움직임 감지까지 가능한 제품을 개발했지만, 내년 2월 복지용구 신청을 준비하면서 추가 기능을 뺐다”며 “기존에 등재된 제품보다 업그레이드했는데 오히려 기능을 낮췄다. 다운그레이드한 것”이라고 말했다. IoT 관련 인증을 받기 어려워 기존 제품과 유사한 감지·알림 기능만 남겼다는 설명이다.
여러 기능을 결합한 돌봄기기도 기존 품목의 경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화형 정서지원기기를 개발하는 한 참석자는 “대화형 정서기기로 신청하면서 다른 품목의 기능을 결합해도 되는지, 추가 센서는 어디까지 인증받아야 하는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용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한 제품에 담을수록 기업이 확인해야 할 품목 분류와 인증 범위도 복잡해진다는 지적이다.
제조·유통 분업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신청 자격 규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AI·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의 한 관계자는 “제품 설계부터 품질관리(QC)까지 직접 다 총괄하더라도 하드웨어 생산을 중국 현지 협력사 공장에 위탁해 이를 매입해 구성할 경우, 신청은 (단순) 제조사 혹은 수입사만 가능해, 협력사가 제조를 한 경우 신청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통신장비와 복수의 주변기기를 연동하는 융합형 돌봄기기의 경우 어느 품목으로 신청하고 어디까지 개별 인증을 받아야 할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불만도 잇따랐다.
복지용구 한도 남는데… 업계 “살 만한 제품 부족”
기업들은 복지용구 분류체계 개편이 실제 시장 진입 확대와 연결되고 있는지도 따져 물었다. 한 참석자는 “3단 분류체계로 바꿨지만 결국 기존 25개 품목을 다시 분류한 것 아니냐”며 “고시 외 신규 품목으로 신청해도 (전례가 거의 없어) 실제 등재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 여전히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급여 이용액이 낮은 원인을 수급자의 수요 부족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단 설명에 따르면 복지용구의 연간 이용 한도는 160만 원이지만 1인당 평균 이용액은 60만 원대다. 이에 대해 한 참석자는 “내구연한이 길고 첫해에 보행기 등을 구입하고 나면 추가로 살 만한 품목이 없다”며 “그만큼 제도가 알려지지 않았거나 이용할 제품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도가 남는다는 이유로 현재 급여 수준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기에 앞서, 정작 수급자에게 필요한 신제품이 급여 대상에 들어오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여러 제품을 대여하는 수급자에게는 같은 한도가 빠듯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참석자는 “대여하는 분들은 160만 원을 금방 채운다”며 “구입과 대여 한도를 분리하는 등 이용 형태에 맞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다른 참석자도 “방문요양과 복지용구는 모두 재가생활에 필요한 서비스인데 급여는 따로 나뉘어 있다”며 “수급자가 필요에 따라 방문요양과 복지용구를 선택해 이용할 수 있도록 예산의 칸막이를 낮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단 관계자는 현재 고시 외 2개 품목을 심사하고 있다며 신규 품목의 진입이 막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평균 이용액에 대해서는 물품 구입 중심 이용자와 전동침대·욕창예방 매트리스·수동휠체어 등을 함께 대여하는 이용자 사이의 지출 차이가 크다고 답했다. 방문요양과 복지용구 급여를 연계하는 방안은 제도 전체의 구조를 바꿔야 하는 사안이라며 장기적인 개선 과제로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해외서 호평 ‘K-돌봄 아이콘’, 인증 벽 넘지 못해
실제로 이날 현장에서는 까다로운 인증과 경직된 등재 기준 때문에 본사업 진입이 멈춰 선 기업 사례들이 거론됐다. 배설케어 로봇 전문기업 ‘큐라코’가 대표적이다. 큐라코의 배설케어 로봇은 현재 국내 요양기관과 중증 와상 환자를 직접 돌보는 가정 등에서 쓰이고 있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록 후 CMS 코드(미국 건강보험 청구코드)를 획득하고 일본 개호보험 급여 품목으로도 정식 등록돼 기술력을 입증받았다. 하지만 정작 안방인 국내에서는 수 년째 고시 외 품목 신청과 심사를 반복해 왔으나 아직 등재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이훈상 큐라코 대표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근 배설케어 로봇의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라며, “복지용구 정식 등록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AI 반려로봇 ‘효돌’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효돌은 고령자 정서 안정과 우울감 개선 효과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제품이다. 지난 2024년 2월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MWC 2024’에서 GSMA 글로모(GLOMO) 어워드의 ‘커넥티드 헬스 및 웰빙을 위한 최고 모바일 혁신상’ 부문을 수상했고, 지난해 11월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UNC)와 뉴욕 한인봉사센터(KCS)가 뉴욕 지역 한인 고령자 30가구에 효돌을 보급해 4개월간 건강·정서 변화를 측정한 연구가 미국 메더연구소의 ‘고령화 혁신 연구상(IRA)’ 동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국내외에서 검증된 실적에도 불구하고 효돌의 복지용구 정식 등록 진행은 미뤄진 상태다. 효돌은 이미 2024년부터 1년간 시범사업까지 마친 상태지만, 공단이 올해 2월 대화형 정서지원기기 품목을 신설하는 과정에서 KISA(한국인터넷진흥원)의 IoT 기기 보안인증과 GS인증(소프트웨어 품질인증) 요건을 추가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인증에 따라 획득에만 1년가량이 소요되는 것도 있어, 내년 상반기 신청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어렵게 목적지에 다다른 순간 공단과 정부가 결승선을 뒤로 옮겨버린 셈이다.
업계에선 공단의 지나친 규제 제일주의로 산업이 고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시장의 경쟁 대상인 중국은 정부의 실버경제 육성 기조 아래 자국의 AI·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첨단 복지용구 제품들을 시장에 쏟아내고 있지만, 국내에선 인증 당시 기준에 맞추느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AI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첨단 제품 운영에 필수적인 통신비나 AI 사용료는 아직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가 적용 정책조차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제품과 서비스의 설계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현장 참석 업체들은 “정부가 앞에서는 산업 육성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로 시장을 막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공단 “기업 의견 수렴 간담회 정례화 논의할 것”
쏟아지는 지적에 대해 발표자로 나선 은복주 국민건강보험공단 요양자원실 팀장은 “품목과 제품을 동시에 등재하는 시스템으로 개편해 소요 기간을 1년가량 단축했고, 공백 영역에 대한 직권등재도 추진 중”이라며 “현재 AI 기반 낙상보호 에어백, 디지털 복약 알림기, 활동감지센서 등 3개 품목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예비급여 시범사업을 2027년부터 본사업으로 정규화해 신기술 제품의 진입을 도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IoT 보안인증 완화 요구나 외주 제조 결합 모델의 신청 자격 문제 등에 대해서는 내부 검토 및 상부 건의를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기업들의 제도 개선 건의 창구를 정례화할 계획이 없느냐는 본지 질의에 대해서 은 팀장은 “올해 신규 등록 추진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차례 간담회를 열어 현장 의견을 청취했다”며 “내년에도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정례화 방안 역시 내부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자문회의에서는 복지용구 제도 외에도 정부의 의료기기 R&D 및 시험·인증 지원 방안이 함께 다뤄졌다. 첫 발표를 맡은 이승현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 책임연구원은 6대 미래유망 분야 및 필수의료기기 국산화를 중심으로 한 ‘첨단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의 추진 전략을 소개하며 “범부처 사업이 첨단 기술 위주로 재편되면서 전통적인 재활·복지용구 분야 지원이 축소된 측면이 있으나, 에이지테크 분야의 현장 수요조사를 상시 접수해 향후 과제 기획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영대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전자의료센터장은 전기·전자 의료기기 안전성 및 전자파(EMC), 사이버보안 시험·인증 지원 체계를 설명하며 현장의 인증 애로에 공감을 표했다. 김 센터장은 “새로 나온 IoT 융복합 제품은 표준 자체가 없어 시험을 못 받는 경우가 많은데, 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해 표준이 조속히 마련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내년도 성남시니어산업혁신센터와 협력해 이송·이동, 보행재활, 낙상안전, 배설케어 등 4대 분야를 중심으로 시니어 실증 데이터 허브 구축과 신뢰성 바우처 지원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