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나이 들면 더 행복해질까?

나이 들면 행복도 달라질까. 국가데이터처의 고령자 통계에서는 고연령층일수록 현재 삶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대체로 낮았다. 반면 22개국을 조사한 국제 연구에서는 50세 이후 연령 집단의 플러리싱 점수가 높았다.
두 결과는 조사 대상도, 측정하는 개념도 다르다. 서울 중장년의 최신 삶의 질 조사와 국내 행복 연구까지 함께 살펴봤다.
나이와 행복의 상관관계
국가데이터처 조사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높을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2025 고령자 통계’에서 2024년 65세 이상 가운데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답한 사람은 35.5%였다. 75~79세까지 만족 비율(매우 만족 + 약간 만족)이 낮아진 뒤 80세 이상에서 소폭 높아졌다. 조사 대상인 13세 이상 전체 인구의 만족 비율 40.1%보다 4.6%p 낮았다. 다만 전년 31.9%와 비교하면 고령층의 만족 비율은 3.6%p 높아졌다.
참고로 40대부터 60대 초반의 삶의 만족도는 별도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5년 KOSIS ‘주관적 만족도’에 따르면 삶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40~49세 47.5%, 50~59세 45.5%, 60~64세 41.9%였다.

서울 40~64세 평균 삶의 만족도
3.18/5점
올해 처음 발표된 ‘서울시 중장년 삶의 질 지표’에서는 서울 거주 40~64세 2058명의 평균 삶의 만족도가 5점 만점에 3.18점으로 나타났다. 조사는 가구경제·고용·주거, 건강·웰빙·돌봄·공동체·문화여가, 노동전환·노후준비·디지털·심리적 전환 등 3개 부문, 12개 영역, 75개 지표를 통해 서울 중장년의 삶을 살폈다.
평균 점수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집단별 차이다. 같은 중장년 안에서도 주거 형태, 소득수준, 혼인 상태, 가구원 수 등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달랐다.
자료 ‘서울시 중장년 삶의 질 지표 : 정책의 실증 좌표’, ‘서울시 중장년 정책포럼 2026 발표자료집’

22개국 플러리싱 지수
18~49세 7.03 vs 80세 이상 7.36
반면 22개국에서 성인 20만 2898명의 종합 플러리싱(Flourishing) 지수를 조사한 결과, 고연령 집단(80세 이상)의 플러리싱 점수가 18~49세보다 높았다. 플러리싱은 번영·번성·충만 등의 의미로, 한 사람의 삶이 여러 측면에서 두루 잘 되어가는 상태를 뜻한다. ‘Global Flourishing Study’는 행복과 삶의 만족, 신체·정신 건강, 삶의 의미와 목적, 인격과 덕목, 가까운 관계, 재정적 안정 등을 함께 측정한다. 한국은 이번 조사 대상인 22개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서울 중장년의 만족도를 가른 것은?
서울시 중장년 삶의 질 조사에서 응답자를 주거 점유 형태, 소득수준, 혼인 상태 등으로 나눠 삶의 만족도 평균을 비교했다. 취업 여부보다 주거·소득·혼인 상태에서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거 점유 형태가 0.69점으로 가장 컸다. 소득수준은 0.65점, 혼인 상태는 0.57점이었다. 반면 취업 여부에 따른 차이는 0.06점에 그쳤다.

벌이에 만족하나?
월평균 가구소득 661만 7000원
현재 소득에 만족 응답은 20.9%
서울 중장년 조사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661만 7000원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자가 거주 가구의 ‘여유 생활비’ 기준 540만 원보다 121만 7000원 높은 수준이다. 한편 현재 자신의 소득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20.9%였다.
참고로 국민연금연구원의 ‘2024년 국민노후보장 패널조사 제10차 부가조사’에서 50세 이상 중고령자가 생각한 월 노후 생활비는 개인 기준 최소 139만 2000원, 적정 197만 6000원이었다. 부부 기준으로는 최소 216만 6000원, 적정 298만 1000원으로 나타났다. 조사에는 50세 이상 가구원이 있는 5138가구와 중고령자·배우자 8394명이 참여했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을 연구한다고 해서 행복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채정호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책 ‘진정한 행복의 7가지 조건’에서 행복을 웰빙, 즉 ‘잘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외부 조건을 많이 갖추는 것만으로 행복을 설명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활용해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주목한다.
채 교수는 행복을 이루는 요소로 수용·변화·연결·강점·지혜·몸·영성을 제시하고 이를 ‘7가지 삶의 스펙트럼’이라고 부른다. 한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것보다 각자의 상태와 삶의 조건에 맞춰 여러 요소를 함께 살피고 활용하는 접근이다.
서은국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이 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도록 진화했는지를 묻는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행복은 삶의 최종 목적이라기보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행동을 반복하게 하는 긍정적 보상에 가깝다. 먹고,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그렇다.
서 교수는 행복의 ‘강도’보다 ‘빈도’를 강조한다. 큰 기쁨을 한 번 경험하는 것보다 작은 긍정적 경험을 일상에서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생각만 바꾸기보다 행복을 유발하는 경험적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음식과 사람,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반복해서 나누는 긍정적인 경험이다.
채 교수와 서 교수 두 사람의 출발점은 다르다. 다만 행복을 재산이나 지위 같은 외부 조건의 축적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일상의 경험과 관계를 중요하게 본다는 점에서는 두 설명이 맞닿는다.

행복만으로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앞에서 살펴본 수치들은 모두 좋은 삶과 관련돼 있다. 지금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자신의 삶 전체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등 건강이나 관계, 삶의 의미, 경제적 안정까지 함께 살펴 ‘잘 살아가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연구도 있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냈더라도 건강이나 관계, 경제적 기반까지 안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당장 힘든 일을 겪고 있어도 삶의 의미를 느끼거나 가까운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숫자를 한 줄로 연결해 ‘나이가 들수록 행복해진다’거나 그 반대로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한국의 사회조사에서는 65세 이상 고령층의 삶 만족 비율이 전체 인구보다 낮았고, 고령층 안에서도 연령이 높아질수록 대체로 낮아졌다. 서울 중장년 조사에서는 연령에 따른 차이보다 주거 점유 형태와 소득수준, 혼인 상태, 가구원 수에 따라 나타난 삶의 만족도 격차가 더 컸다.
반면 22개국이 참여한 ‘Global Flourishing Study’에서는 50세 이후 연령 집단에서 종합 플러리싱 점수가 높아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 결과를 한국의 삶 만족도 수치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고연령 집단에서 삶의 여러 영역을 종합한 플러리싱 수준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경향은 확인된다.
결국 나이는 행복이나 삶의 만족을 설명하는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같은 연령대 안에서도 주거와 소득·관계·건강 등 삶의 조건이 다르고, 무엇을 ‘잘 사는 삶’으로 측정하느냐에 따라서도 결과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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