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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배운다

입력 2026-08-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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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중장년 진짜 공부’] “길 위에서 낯선 나를 만나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누구나 한 번쯤 읊조려봤을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 마지막 대목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이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한 배를 탄 여행자다.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여행을 즐길 줄 몰랐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 것이 두려웠고,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 불편했으며,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불안했다. 청와대에서 일할 땐 대통령 해외 순방을 수십 차례 다녔지만,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보는 게 전부였다. 모스크바에 갔지만 성 바실리 대성당을 본 건 차창 밖에서였고, 뉴욕에 가서도 센트럴파크를 걷지 못했다.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도 정작 아무 데도 가지 않았던 셈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을 모시고 이스탄불에 갔다. 공식 일정이 끝난 늦은 저녁, 혼자 호텔을 빠져나와 골목을 걷다가 작은 찻집에 들어갔다. 창밖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해협에 비친 불빛이 흔들렸다. 그 순간 무언가가 열렸다. 두 대륙이 만나는 도시, 동양도 서양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처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꼈다. 낯선 공간과 사람은 익숙한 나를 낯설게 만드는 거울 역할을 한다.


왜 여행인가

일상에 있으면 일상이 보이지 않는다. 아내의 얼굴, 집 앞 나무, 출퇴근길 하늘. 우리는 이것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냥 있다는 것만 안다. 여행은 그 익숙함의 껍질을 벗겨낸다. 내가 여행지에 가면 가장 먼저 찾는 재래시장에서는 삶이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나와 다르다는 것, 이 넓은 세상에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이 단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배운다. 책에서 읽는 것과 전혀 다른 앎이다.

그런 여행은 목적지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목적지를 향해 길을 걷고 낯선 음식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그리고 그로부터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는 여행이다.

헤르만 헤세는 1911년 인도로 떠나면서 정신적 해방을 기대했다. 그는 당시 유럽의 합리주의와 물질문명에 깊이 회의하고 있었기에 인도 여행에서 그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여행은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다. ‘찾아야 할 것은 바깥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다’는 각성이다. 헤세는 그 여행을 통해 작품 ‘싯다르타’를 얻었다. 찾는 것을 얻진 못했지만, 찾는 것이 자신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여행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났을 때 더 뜻깊다. 완벽한 일정을 짜도 길을 잃거나 차를 놓치기 마련이다. 그것이 여행의 묘미다. 인생 역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방황과 우연 속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찰스 다윈은 스물두 살 때 비글호에 올랐다. 17~18세기 유럽 상류층 청년들이 교양을 쌓기 위해 떠났던 장기 여행, 이른바 ‘그랜드 투어’였다. 5년 동안의 항해였다. 부유한 목사 집안의 아들로, 의대도 신학대도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하던 청년이었다. 아버지는 그 항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다윈은 갈라파고스섬에서 우연히 핀치 새를 만났다. 10종이 넘는 핀치의 부리 크기와 형태가 서로 달랐다. 이는 환경에 따라 생물이 다른 방향으로 적응한다는 진화론의 기반이 됐다. 그 여행이 없었다면 ‘종의 기원’도, 현대 생물학도 없었을 것이다. 한 청년의 5년 여행이 인류의 세계관을 바꿨다.


나이 들수록 여행은 달라진다

젊을 때와 나이 든 후의 여행은 다르다. 젊을 때는 많이 보려 한다. 배낭여행자들이 ‘몇 개국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건 그래서다. 나도 쉰 살까지는 다녀온 국가 수를 세며 이미 갔다 온 나라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이 들면 많이 보는 것보다 깊이 보는 것이 중요해진다. 나는 이제 한 도시에 가서 오래 머무는 걸 좋아한다. 관광지보다 사람들이 드문 골목길, 유명 레스토랑보다 동네 식당을 좋아한다. 그곳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50대 이후의 여행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젊어서 갔던 곳을 다시 가면 그 도시의 변화와 나의 변화가 동시에 보인다. 30년 전 배낭을 메고 헤맸던 바르셀로나의 골목을 이번엔 아내 손을 잡고 걷는다. 같은 골목인데 보이는 것이 전혀 다르다. 그때는 싸구려 숙소를 찾아 두리번거렸고, 지금은 골목 끝 고양이 한 마리를 오래 바라본다. 여행이 달라진 게 아니라 내가 달라진 것이다. 젊었을 때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내가 베르테르가 돼 로테를 향한 열정으로 읽었다면, 나이 들어서는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집착을 안타까워하며 읽게 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까.


여행이 가르치는 것 두 가지

여행은 겸손을 가르친다. 내가 처음으로 한 해외여행은 1993년 대우증권에서 사장을 모시고 다녀온 인도 출장이었다.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내리기 전 하늘에서 바라본 인도는 ‘달나라’처럼 모든 게 달랐고 신비로웠다. 그때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제 잘난 맛에 살던 난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낯선 나라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 그건 세상이 넓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좁았는가를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이 들수록 우리는 좁아지기 쉽다. 아는 사람들만 만나고, 가던 식당만 가고, 보던 프로그램만 본다. 그 좁은 안락함 속에서 세계는 점점 작아진다. 여행은 그 벽에 구멍을 낸다. 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그 바람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여행은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한다. 식사 방식, 인사 방식, 시간관념은 나라마다 다르다. 그 어느 것도 틀리지 않다는 걸 몸으로 알면 내 방식이 절대적이라는 오만이 사라진다. 살면서 가장 위험한 것은 ‘내가 다 맞다’, ‘내가 다 안다’는 착각인데 여행은 그 착각을 깨뜨린다.

여행은 또한 내가 누구인지를 가르친다. 직장을 나와 앞날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던 쉰 살 초반, 혼자 교토에 갔다. 일주일 동안 아무 계획 없이 걷고 길을 잃었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그 불안이 이틀이 지나니 자유로 바뀌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나도 아무것도 찾지 않았다. 이끼 낀 돌담 앞에서 한 시간을 앉아 있었던 날, 나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나 자신을 만난 것 같았다.

낯선 곳에 있으면 과거가 따라오지 않는다. 서울에 있을 때는 어제의 후회, 내일의 걱정이 항상 곁에 있다. 하지만 낯선 도시의 골목에서는 지금 이 순간만 있다. 지금 이 냄새, 이 소리, 이 빛깔. 어린아이처럼 감각이 열린다. 명상 책을 아무리 읽어도 현재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것을 낯선 골목 하나가 단숨에 해결해주기도 한다.

결국 여행의 목적지는 ‘나’다. 우리는 역할 속에서 산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상사, 누군가의 남편. 그 역할들이 나를 규정한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면 역할이 벗겨진다. 그때 남는 것이 진짜 나다. 처음엔 그게 낯설고 불안하다. 역할이 없는 나는 무엇인가. 그 질문 앞에 오래 서 있는 것, 그것이 나이 든 후 여행이 주는 가장 깊은 선물이다.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여행을 여행답게 하는 것

여행지에 가서도 여행을 못 하는 사람이 있다. 사진 찍느라 정작 풍경을 보지 않는다. 인증샷을 위한 여행, 몇 개국을 셈하는 여행, 몸은 낯선 곳에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일상 속에 있는 여행. 이런 여행은 피로만 남긴다.

여행을 여행답게 만드는 건 마음가짐이다. 모르는 것을 즐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길을 잃어도, 계획대로 안 되어도 괜찮다고, 그 혼란 속에 뭔가가 있다고 믿는 것. 사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계획한 것들이 아니다.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해 들어간 카페에서 만난 사람, 버스를 잘못 타서 가게 된 동네. 실수와 우연이 최고의 여행을 만든다.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이 그랬다. “20년 후 당신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더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닻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를 떠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품을 가득 담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천천히 가야 한다. 빠르게 많이 보는 것보다 느리게 하나를 보는 것이 낫다. 나는 여행을 떠날 때 메모장부터 챙긴다. 그냥 지나치면 사라지는 것들도 적으면 남는다. 이 골목의 색깔, 저 상인의 표정, 바람의 온도. 메모하면서 비로소 제대로 본다. ‘여행의 기쁨’의 저자이자 프랑스의 여행작가 실뱅 테송은 느리게 걷는 여행자로 유명하다. 그는 비행기도 기차도 자동차도 타지 않는 대신 늘 노트를 소지한다. “나는 여행할 때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낚아채 메모한다. 여행자는 노획물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약탈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혼자 가는 여행도 해볼 것을 권한다. 동행이 있으면 편하지만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없다. 처음엔 외롭다. 그 외로움을 통과하면 오래된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

발품을 팔지 않고도 여행은 가능하다. TV 프로그램으로 다녀오는 여행, 에세이로 대신하는 여행이 그것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영어에 ‘Armchair Traveler(안락의자 여행자)’란 표현이 있다. 자기 집 소파에 앉아 남극이나 에베레스트를 탐험하는 여행자를 비꼬는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방구석 여행자들이다. 한 층에 간접경험을 쌓고 그 위에 직접경험을 얹고 그 위 다시 누군가의 간접경험을 추가한다. 이 모두를 더해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 당장 멀리 갈 필요는 없다. 가보지 않은 옆 동네도 여행이다. 낯선 시각에 낯선 길로 출근하는 것도 여행이다. 중요한 건 거리가 아니라 낯섦이고, 낯섦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12세기 프랑스 신학자 성 빅토르 위고가 말했다.

“고향을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하다. 모든 땅을 고향으로 여기는 사람은 이미 강하다. 그러나 온 세상을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하다.”

자신이 속한 작은 공동체에 익숙한 ‘정주민’의 삶보다는 어디서든 적응하고 살아가는 ‘이주민’의 삶이, 이런 이주민의 삶보다는 그 어디에도 동화되거나 안주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방인’의 삶이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이방인의 삶을 지향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여행하는 삶이야말로 바로 그런 삶이 아닐까 싶다.


여행의 급수

1단계 : 풍경을 소비하는 정도. ‘처음 만들어진 것’, ‘가장 크고 긴 것’, ‘제일 오래된 것’을 찾는 관광객 수준이다. 이때는 보이는 것만 본다.

2단계 : 낯선 것과 만남을 즐기는 수준.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경험하며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

3단계 : 쉼과 재충전이 목적이다. 무언가 보고 경험하기 위해서가 아닌 쉬기 위해 여행한다. 여행은 다시 살아가기 위해 호흡을 조절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4단계 :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는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고 말했다. 여행으로 새로운 눈을 갖게 된 사람은 풍경을 머리와 가슴으로 음미하고, 길 위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살핀다. 여행에서 삶을 배우고 한 단계 더 성숙한 존재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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