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 세상] 영화 아저씨부터 드라마 김부장까지
콘텐츠의 주 소비층은 여전히 중장년 여성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중장년 남성 중심의 서사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나고, 여기에는 어떤 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

간간이 등장한 ‘아저씨’, 신드롬됐다
전제해야 할 건, 콘텐츠의 주 소비층은 과거에도 현재도 여전히 중장년 여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저씨를 다룬 콘텐츠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0년 개봉해 원빈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아저씨’를 떠올려보라. 이 작품에서 원빈이 연기한 아저씨는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전직 요원이다. 그는 이웃 소녀가 위기에 처하자 목숨 걸고 사투를 벌이는 모습으로 신드롬의 주인공이 됐다.
1990년대 말부터 이른바 ‘고개 숙인 남자’라는 표현이 아저씨를 대변하는 말처럼 굳어졌다. 특히 세기말부터 뉴스 사회면을 가득 채우던 극악한 범죄자들이 약자를 유린하던 시절을 거쳤다. 이 시기 아저씨들은 무력감을 느꼈다. IMF를 통과하며 삼팔선(38세가 되면 그만둘지 계속 다닐지 선택),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다니면 도둑)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직장 생활이 뿌리부터 흔들리면서 누군가를 지켜주기는커녕 자신조차 지켜내기 힘든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당시 ‘아저씨’는 바로 이런 중장년 남성들의 무력감을 액션 판타지라는 장르로 풀어냄으로써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2018년에 방영해 많은 이의 인생 드라마가 된 ‘나의 아저씨’는 어떤가. 주인공 박동훈(이선균 분) 부장은 후배가 사장인 회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인물이다. 심지어 그 사장은 박 부장의 아내와 불륜 관계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그를 환대하는 이는 없다. 그가 기댈 데는 은퇴 후 백수나 다름없이 살아가는 형과 역시 백수 같은 영화감독의 삶을 살고 있는 동생, 그리고 밤이면 정희네 술집에 모여드는 동네 아저씨들 정도다.
하지만 이 차가운 현실 앞에서도 묵묵히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박 부장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청춘 지안(아이유 분)을 돕는다. 박 부장의 힘겨운 삶을 지안 역시 공감하며 상처받은 두 영혼은 정서적 교감과 연대를 통해 서로를 치유한다. ‘나의 아저씨’는 당시 꼰대로 불리거나 혹은 ‘개저씨’라고까지 불렸던 아저씨들을 이해와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깊은 울림을 줬다. 아저씨들은 물론이고 여성들까지 이 작품에 열광했는데, 그건 ‘진정한 어른’으로서의 아저씨를 기대하는 마음이 투영된 것이었다.
많이 등장하진 않았지만 간간이 나올 때마다 ‘아저씨 콘텐츠’는 그 반향이 만만찮았다. 그만큼 소외된 정서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걸 채워주는 콘텐츠의 판타지가 가진 반향이 컸다는 방증이다. 이 흐름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JTBC에서 방영돼 화제를 불러일으킨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와 올해 신드롬급 인기를 끈 SBS 드라마 ‘김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극사실주의거나 극단적 카타르시스거나
작년에 방영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한국 중년 남성이 겪는 뼈아픈 현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해부해 보여줬다. 극 중 김낙수(류승룡 분)는 입사 25년 차 통신사 대기업 부장으로, 서울에 자가 아파트를 보유한 한국형 중산층의 표본처럼 등장한다. 억대 연봉에 대형 국산 세단을 모는 그는 아직 쓸 만한 서류 가방도 수백만 원짜리 명품으로 바꾼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김 부장은 악의적인 꼰대라기보다는 과거의 성공 공식에 갇혀 있는 시대착오적 리더다. 드라마는 김 부장이 이룬 ‘평범한 성공’마저 얼마나 쉽게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줘 큰 공감을 얻었다. 임원 승진 탈락, 지방 공장으로의 좌천, 그리고 이어진 희망퇴직과 부동산 투자 사기까지, 이 중년 남성에게 닥친 일련의 비극은 중장년 세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 그 자체다.
술에 취한 김 부장이 아들에게 “너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대기업 25년 차 부장으로 살아남아서 서울에 아파트 사고 애 대학까지 보낸 인생은 위대한 거야”라고 하는 말이 단순한 허세처럼 들리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그토록 애써 살아왔으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작은 선물조차 해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토닥이는 김 부장의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에 많은 중장년 남성이 고개를 끄덕인 이유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이처럼 극사실주의적 관점으로 중년 남성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면, 올해 방영된 ‘김부장’은 정반대로 액션 판타지를 통한 극단적인 카타르시스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최고 시청률 23.1%(닐슨 코리아)를 기록했고, 넷플릭스로도 방영돼 글로벌 순위 차트 꼭대기에 이름을 올렸다. 네이버 웹툰 원작의 하드보일드 액션 복수극인 ‘김부장’에서 김 부장(소지섭 분)은 중소 저축은행에 다니는 평범한 40대 가장이자, 여고생 딸과의 소통에 서툰 무력해 보이는 아저씨다.
하지만 딸이 학교폭력 가해자와 조폭들에게 납치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김 부장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그는 과거 코드네임 ‘66’으로 불리던 최정예 북파 특수공작원 출신 블랙요원이다. 리암 니슨 주연의 영화 ‘테이큰’이 떠오르는 익숙한 서사지만 이 작품은 남북 분단 상황 같은 한국적인 상황과 딸 바보 정서가 더해지면서 타격감을 극대화하는 카타르시스 액션을 만들었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촉법소년’이라 처벌받지 않는다고 조롱하는 가해자에게 김 부장이 내뱉는 대사가 그 카타르시스를 대변한다. “촉법소년? 표현 좋네. 그럼 난 무법중년 해야겠다.”

새로운 아저씨 상 대안 내놓으려면
사실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중장년 남성은 주로 가정을 등한시하는 권위적인 아버지, 직장 내 부조리를 일삼는 꼰대 상사, 혹은 불륜의 주체 등 변해야 할 대상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현실에 구태와 구악의 아저씨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좀 더 바람직한 아저씨 상(像)을 찾아내고 제시하기보다 그저 적폐로만 그려낸 건, 아무래도 이들을 타자화하는 경향 때문이다. 즉 여성 중장년 세대를 타깃으로 우선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아저씨들은 소외돼 그려졌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아저씨’가 끄집어낸 바람직한 어른으로서의 새로운 아저씨 상이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자기반성을 통해 잃었던 자신을 찾아가는 아저씨의 모습, 그리고 ‘김부장’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는 ‘책임감 강한 어른’의 아저씨 상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기형적으로만 그려졌던 소외된 아저씨의 이미지를 깨고, 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아저씨 상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류승룡·소지섭·신하균 같은 탄탄한 연기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4050 배우를 전면에 내세워 중장년 남성을 겨냥한 콘텐츠의 등장과 성공은 산업적인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여성 중심의 로맨스나 젊은 세대 타깃의 아이돌 캐스팅에 의존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중년 하드보일드 혹은 블랙코미디 같은 기획 역시 엄청난 상업적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OTT 체제로 재편된 콘텐츠 산업의 변화 속에서 전통적인 멜로·가족·사극 같은 장르에서 액션·스릴러·누아르·첩보물 같은 다양한 장르까지 등장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이런 장르물의 등장은 중장년 남성들의 취향을 저격하며 그들을 TV 앞에 앉혀놓기 시작했다.
물론 이른바 ‘아저씨 판타지 콘텐츠’들이 갖는 한계도 분명하다. 예를 들어 ‘김부장’의 사이다 응징은 시원하긴 하지만, 이런 영웅주의적 판타지는 자칫 법적·제도적 결함을 초월적 개인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돌파하려는 사적 제재의 미화로 소비될 수 있다. 현실의 중장년 남성이 직면한 구조적 모순들, 이를테면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나 세대 간 소통 단절, 사회적 안전망 부재 등을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오히려 은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같은 극사실주의 작품에서도 이 인물과 사회적 구조를 향한 냉철한 성찰보다 ‘자기 연민’의 콘텐츠로 소비될 우려도 있다. 부동산 자산가나 대기업 정규직과의 양극화로 생겨나는 구조적 문제나 투자 사기 등은 중요한 문제다. 이런 문제의식은 탈색되고 오직 개인의 짠내 나는 사투만 부각한다면 세대 간의 진정한 이해를 돕기보다 기성세대의 자기 정당화에 머물 수 있다.
한 사회의 특정 세대나 구성원은 그 개개인의 고유성을 소거당하고 납작하게 일반화될 때 깊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젊게 살려는 중장년 세대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담아낸 ‘영포티’라는 지칭이 젊은 세대에게 조롱의 의미로 쓰이게 된 건, 부정적 면모만 부각한 일반화 때문이다.
지금의 중장년 세대는 직장에서 꼰대 취급받는 ‘샌드위치 세대’, 가정에서는 ‘마처 세대(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위치에 놓여 있다. 콘텐츠는 이들을 그저 대상화해 빌런화·희화화하거나 정반대로 판타지화하는 것을 넘어, 이들의 구조적 현실을 직시하고 이 변화된 시대에 맞는 바람직한 아저씨 상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아이들의 아빠이자 남편이자 연인이기도 한 중년 남성을 우리 사회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는 길이 될 테니.
관련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