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한마디]

대학 시절 가까운 친구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믿기 어려운 비보였다. 장례 첫날부터 빈소를 지키고 장지까지 따라갔다. 밤샘 끝에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아버지는 말없이 내 등을 두드리며 “잘했다”고 했다. 잠시 침묵하던 아버지가 “그렇게 매사에 네 진심을 다해라. 사람이 진심을 다하면 결국 마음이 움직인다”고 덧붙였다.
다음 날 진심(眞心)을 ‘목적이나 계산이 없는 마음’이라고 정의한 아버지는 “내 이익을 챙기려 하거나 상대를 조종하려는 의도가 들어가면 이미 진심이 아니다”라고 했다.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이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하나로 이어져야 비로소 진심이 된다고도 했다. 아버지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진심은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거다”라고 일러줬다.
진심의 시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온전히 함께해 주는 데 있다고 아버지는 설명했다. 앞과 뒤가 같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며, 상대가 무심코 했던 작은 말까지 기억하는 일관된 태도 속에서 상대편은 비로소 진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어 ‘중용(中庸)’에 나오는 한 구절도 들려줬다. ‘지성능화(至誠能化)’다. 지극한 정성은 끝내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원문은 이렇다. “작은 것에 성실하라. 성실하면 저절로 드러나고, 드러나면 분명해지고, 분명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감동하고, 감동하면 변하고, 변하면 얻을 것이니, 지극한 성실함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꿈과 이상은 크지만, 현실의 행동이 따르지 못하면 오히려 자신과 남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말씀도 가르쳐줬다.
그 말을 들을 때 오래전 한 장면이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화강암 채석 광산을 경영했다. 채석한 원석을 서울 석재 공장으로 실어내는 광산이었다. 매일 산 중턱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돌을 캐내는 위험한 일이었다. 석질이 예전 같지 못해 채굴이 어렵다는 얘기를 얼마 전 들었을 때쯤이었다.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나서 작업장 인부 세 명이 깔려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해하던 어머니는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아버지의 옷가지 등을 싼 보따리를 내주며 광산에 가보라고 했다. 회사 덤프트럭을 타고 도착한 광산은 어둡고 조용했다. 굳게 닫힌 정문 앞에서야 운전기사가 사고 소식을 들려줬다. 트럭은 곧장 희생자 집으로 향했다. 상가에 도착한 나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가 빈소 안이 아니라 집 앞 밭에 세운 작은 천막 안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유족들의 원망이 너무 커 빈소에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사흘째 그곳을 떠나지 못한 채 욕설과 원망을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초췌한 얼굴의 아버지는 나를 보고서도 아무 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며칠 뒤 사고는 수습됐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일을 끝으로 평생 광산 일을 다시 하지 않았다. 힘들게 일군 사업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아버지가 달리 그날 일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때 아버지가 왜 그 천막을 떠나지 않았는지 조금 이해하게 됐다. 아버지는 돈이나 법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계산으로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았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를 지키며 유족의 슬픔과 분노를 함께 견뎌냈다. 그것이 아버지가 말씀하던 진심이었다.
아버지는 생애 첫 사업으로 돌을 캐고, 깨는 일을 했다. 그러나 정작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은 상처 입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날 천막 속의 아버지는 내게 책임이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것임을, 사람의 생명은 그 어떤 이익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진심이란 어려운 게 아니다”라고 말문을 연 아버지는 “상대의 아픔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의 문은 저절로 열린다”고 했다. 머리로 꾸며낸 말이나 행동은 어딘가 어색함이 남는다. 들키기도 쉽다. 그러나 진심은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된다. 사람은 진심 앞에서 경계심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는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고, 비로소 마음을 연다.
이제 나도 어느새 그 시절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됐다. 사랑스러운 손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너희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빠르고 편리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쉽게 열리지 않는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럴 때 요령으로 덮으려 하지 말아라. 변명으로 빠져나가려 하지도 말아라. 진심으로 마주해라. 세상에는 힘으로 열리는 문도 있지만, 사람의 진심으로만 열리는 문이 더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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