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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 향이 소환하는 기억들

기사입력 2019-07-22 08:41

PART 07 인생의 내음

카레는 요리 솜씨가 없는 사람도 맛을 내기 좋은 음식이다. 감자, 양파, 당근을 썰어넣고 카레 가루와 함께 끓이기만 하면 된다. 간을 맞출 필요도 없으니 이보다 쉬운 요리는 없다. 아이들이 외출했다 돌아와 “엄마, 오늘 카레 했어?” 하고 반기는 것은 온 집 안에 진동하는 카레 향 때문이다. 나는 카레 냄새가 참 좋다.

어렸을 때, 학교 수업이 끝나면 총알처럼 뛰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안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를 따라가면 엄마는 언제나 음식을 만들고 계셨다. 엄마 요리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카레였다. 대문 밖까지 카레 냄새가 나는 날에는 신발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집으로 뛰어들었다.

카레 요리를 하는 날 엄마는 그릇장에서 화려한 양식기를 꺼냈다. 작은 꽃들이 촘촘하게 그려진 접시의 가장자리는 은빛 테가 반짝였다. 엄마는 이 접시에 갓 지은 하얀 쌀밥을 담고 큼직하게 썬 감자가 들어 있는 카레 소스를 듬뿍 얹어주셨다. 그러면 카레 소스에 비빈 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잘 익은 깍두기와 함께 먹곤 했다. 입이 짧은 나도 한 공기 뚝딱 비우곤 했던 아주 맛난 음식이었다. 특히 엄마가 애지중지 아끼는 접시에 카레 소스를 담으면 마치 레스토랑에 온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돼서도 카레 향을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뭔가 근사한 음식을 앞에 두고 있는 느낌이 들곤 한다. 아이들에게 카레 요리를 자주 해주는 것은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내 기억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박찬일 셰프가 쓴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는 책을 보면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음식 이야기가 나온다. 가령 운동회 때 엄마가 싸주셨던 삼단도시락, 중국집에서 먹었던 자장면, 시장통 좌판 아낙네가 등에 업힌 아이에게 우물우물 씹어 먹여주던 국수 등은 지나간 시간들을 아름다운 장면으로 되돌려준다고 말한다.

박찬일 셰프에게 과거를 추억하게 만드는 것이 음식이라면 내게는 음식 냄새다. 온 집 안에 강렬하게 퍼지던 카레 향. 그 향을 맡으면 과거의 장면들이 순식간에 떠오른다. 살아오면서 맛있고 멋진 요리를 많이 먹어봤지만 아직도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카레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은 카레 향이 퍼질 때마다 소환하는 행복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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