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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증후군

기사입력 2018-10-09 08:22

지인들과 당구를 치고 나면 배도 출출하고 해서 뒤풀이를 한다. 워낙 오래 한 동네에서 만나다 보니 웬만한 음식점은 거의 다 섭렵했다. 매번 음식점이나 메뉴가 겹치기 마련이다. 새로 생긴 집이나 안 가본 음식점이 있으면 좋으련만.

“어디로 갈까?” 물으면 좀 생각하는 듯하더니 결국 “아무 데나 가자”가 나온다. 그렇게 아무 데로 들어가고 나면 메뉴 선택으로 결정 장애를 겪는다. “뭘 시킬까?” 하고 물으면 “아무거나”라고 답한다. 술도 소주, 맥주, 막걸리 중에 고르라고 하면 역시 ‘아무거나’. 소주는 잘 팔리는 브랜드가 두 가지라서 또 어느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역시 ‘아무거나.

성격 좋고 식성 좋으니 결정하는 대로 따른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결정 장애이다. ‘짬짜면’이 그래서 생겼단다. 중국집에 갔는데 짜장면을 먹자니 짬뽕도 먹고 싶고, 짬뽕을 시키자니 짜장면도 먹고 싶은 것이다.

두 가지가 다 나오니 만족스러운 것이다. 요즘은 볶음밥도 한쪽에 짜장 소스를 같이 올려준다. 이런 현상을 '햄릿 증후군'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성향을 이르는 말이다.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Hamlet)’에서 주인공인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로 비극 속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런 현상이 소비자의 심리 경향까지 연장되는 모양이다. 몇 가지 중에 고르라면 금방 고르는데, 여러 가지를 내놓고 고르라면 오히려 선택을 포기하거나 망설이는 현상을 말한다. 중국 음식점에 가서 메뉴를 한참 들여다보지만, 짜장면이나 짬뽕을 결국 선택하면서 결국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니 아쉬워하는 사람을 위해 짬짜면이 나온 것이다. 시니어들에게 메뉴를 고를 때 망설이는 이유는 이미 몇 번이고 다 먹어 본 것들이기 때문이다. 메뉴 선택에 머리를 굴리기 싫은 ‘귀차니즘’은 덤이다. 곱창처럼 맛은 있는데 기름기가 많아서 피하는 메뉴가 아니라면 대부분 ‘아무거나’이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판정을 받은 사람이 많아 메뉴 선택에 한계가 있다. 골라 봐야 몇 가지 없다는 것이다. 혼자 먹을 때는 된장찌개, 여럿이 같이 먹을 때는 가장 무난한 것이 얼큰한 김치찌개, 동태찌개이다. 시니어들 주머니 사정도 빤하니 그 이상 메뉴를 고르기도 어렵다. 누군가 좋은 일 있다며 한턱 쏜다고 하면 그제야 생선회집이라도 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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