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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에도 장사의 신(神)은 있다

기사입력 2018-03-09 09:14

요즘 십중팔구 자영업에 뛰어들면 망한다고 한다. 집 주위 가게를 별 생각 없이 보면 언제나 가게 문은 열려있고 영업은 한다. 그러나 어떤 가게를 타깃으로 하여 집중적으로 눈여겨보면 알게 모르게 업종변경이나 가게 주인이 바뀌고 있다. 손님이 제법 있어 성공했구나 싶었는데 업주가 바뀌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보니 그 정도 사람이 들어와선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박리다매라고 싸게 팔면 손님이 더 많아야 자영업은 살아남는다.

우리 집 뒤편에 작은 길이 있고 중간쯤에 생뚱맞게 10평대 작은 가게가 하나 있다. 주택지 사이에 있기에 눈에 잘 들어나지도 않는다. 가게업종이나 주인이 참 자주 바뀐다. 처음에는 중국음식점이 들어왔다. 40대의 배달부 아저씨가 겉에는 하얀 위생복을 입었지만 안에는 와이셔츠에 붉은 색깔의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배달을 다닌다. 식당 내부도 아주 깨끗했다. 장사가 제법 잘되는 것 같더니 문을 닫았다. 위생적으로 문제가 없었고 맛도 있고 동네장사니 착한가격까지 고집했다. 한동안 장사가 잘되는 것 같더니 문을 닫았다. 풍문에는 깔끔하던 남자 주인이 바람을 피웠다고 하는데 확인은 못했다.

다음에는 커피점이 들어왔다. 벽지도 새로 하고 고급커피머신도 들여놨다. 단골을 확보하려는 영업 전략으로 마일리지 카드도 만들었다. 차 한 잔에 마일리지 카드에 도장하나를 찍어 준다. 10개가 모이면 손님이 원하는 차 중에서 딱 한잔을 서비스하겠단다. 집근처라 해도 자주갈 일이 없어서 아주 드문드문 갔지만 내가 먹은 커피 열 잔을 채우기도 전에 문을 닫았다. 필자가 자주 팔아주지 못해 문을 닫은 것 같아 미안했다. 동네 한가운데 커피전문점은 단골 고객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 문을 닫은 주된 이유로 보인다.

다음에는 또 음식점이 들어왔다. 주인아주머니가 전라도 여수사람이라고 했다. 여수식의 바다 장어탕을 만들었다. 장어탕위에 손바닥 크기의 큼직한 두부가 한 점 올라가는 것이 특색이다. 내 입에는 잘 맞았지만 손님이 별로 없다. 주인에게 ‘이렇게 맛도 좋고 가격도 착한데 아직 선전이 덜되어서 그런지 손님이 생각만큼 적네요.’했더니 ‘전라도식 장어탕이 서울 사람입맛에 맞지 않는 모양’이라고 한다. 지방에서 승승장구 하던 토속 음식점이 서울에 오면 맥을 못 추고 주저앉는 모습을 본다. 손님이 없으니 가게는 문을 닫아야 했다.

호프집도 들어왔고 과일가게도 들어왔다. 그마저도 잘 안될 때는 한동안 가게를 비워두기도 했다. 어느 날은 시끌벅적 사람이 모여 있어 가봤더니 천원, 오백 원하는 반짝 떨이상품을 팔기도 한다. 화장품 세일 전문매장도 들어왔다. 50% 할인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내다 걸었다. 떨이상품 매장은 원래 10일이내로만 장사를 하니 재미를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업종은 바뀐다.

최근에 만두전문점이 들어왔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손님들이 먹고 가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유명한 요리 전문가가 직접 와서 비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줄을 서서 몇 십 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니 얼마나 맛있으면 저렇게 꿋꿋하게 기다릴까! 궁금해진다. 비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고 밖에서 기다리는 모습에 만두를 좋아하지 않는 필자도 두 손 들었다. 먹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직장인들이 우르를 몰려오는 11시 반부터 1시반 까지가 피크시간이다. 이 때를 피해 오후 2시쯤 아내와 함께 갔다.

손님이 차고 넘치다보니 메뉴가 아주 단순하다. 순한 맛과 매운맛의 두 가지 종류의 만두를 찐 만두와 만둣국으로만 팔고 있다. 반찬이라고는 달랑 단무지 하나뿐이다. 배달은 정중히 거절이다. 매운맛과 순한 맛의 만둣국을 주문했다. 주문을 받고 준비된 재료로 즉석에서 만든다.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영업 전략의 일종이 아닌가하고 의심도 한다.

먹어본 맛을 평가할 때다. 모두가 맛있다고 하는데 혼자서 맛없다는 말 못한다. 맛은 있다. 그렇다고 몇 십 분을 기다려서 먹기는 싫다. 요리달인이 직접 지도해주고 갔다는 유명세 때문에 손님이 차고 넘치는지 아니면 나 같은 맛을 잘 모르는 맛치 따위가 못 느끼는 독특한 맛이 있는 것이지 아니면 모두가 줄을 서니 덩달아 줄을 서는 필자와 같은 줏대 없는 사람들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도 손님은 줄을 서서 20~30분은 족히 기다린다. 여러 사람이 들어와서 망해나간 자리지만 역시 장사의 신은 있다. 틈새시장, 블루오션을 찾아 헤매는 자영업희망자에게 힘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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