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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수다

기사입력 2019-04-01 11:01

가끔 여자는 남자와 뇌구조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번 경험하는 일이지만 지난여름 여행 갈 때도 그랬다. 오랜만에 동유럽 여행을 가는데 비행시간만 무려 12시간이 걸렸다. 아내가 창 쪽에 앉았고 내 옆으로 다른 팀이 앉았는데 나는 대여섯 시간 동안 옆 사람과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러다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는 사이 아내와 자리를 바꿨다. 그런데 아내가 단 30초 만에 옆 사람들과 말을 텄다. “어디서 오셨느냐?”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여행을 오게 된 동기며 그간 어디를 갔다 왔느냐는 등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남자들은 그러기가 힘든데 여자들은 쉽게 말을 튼다.


동네 헬스클럽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자기 운동만 열심히 하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남자들도 대부분 그렇다. 오죽하면 내가 먼저 말을 걸어 얼굴 본 지 1년 만에 말을 튼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내는 다르다. 헬스클럽 아줌마들과도 친하게 지낸다. 새로 온 사람과도 대화를 잘하고 가끔 식사도 한다. 집에서도 그렇다. 처제랑 통화를 하면 기본 통화시간이 1시간이다. 한참 후에 이제 전화를 끊나 싶으면 이야기가 또 이어지곤 한다. 남자들은 통화할 때 간단명료하다. 5분 이상 하지 않는다.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하지!” 하면 끝이다.

결국 얼마 전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따라 점심 약속이 있어 직장에서 양해를 얻고 1시간 반을 버스와 전철을 타고 가 목적지에 내렸다. 그런데 약속 장소인 건물로 막 들어가려는 찰나에 전화가 울렸다. 회사였다. 직원이 외부 교육장에서 받은 서류를 2주 전 내게 전달했다는데 없으니 확인해달라는 거였다. 금일 5시에 마감이라 급하다고 했다. 내가 서류를 받았으면 이튿날 분명히 전달했을 텐데 없다니 난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집이나 사무실 책상 등에서 다시 한번 찾아봐야 했다. 우선 아내에게 문자를 넣고 전화를 부탁했다.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몇 번이나 해도 받지 않았다. 진퇴양난이었다. 서류 확인을 위해 집으로 또는 사무실로 가려면 1시간 반 이상이 걸려 그러기는 불가능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점심 약속을 포기하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내와의 연락은 안 됐다. 응급조치로 대처를 하고 나니 5시 반이 됐고, 그제야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갔을 때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도대체 5시간 동안 연락도 안 하고 뭘 하고 있었냐?”는 물음에 아내는 어리둥절해했다. 살면서 화내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 남편이 그러는 것도 그렇고, 낮엔 전화도 잘 하지 않던 사람이 통화가 좀 안 됐다고 언성을 높이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성당에 갔다가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놓고 오랜만에 옛 직장 동료들과 만나 점심 먹고 차 마시며 수다를 떨다 보니 전화가 온 줄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화를 낼 상황인가 하면서 오히려 의아해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아무리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떤다 해도, 문자도 전화도 온 줄도 모르고 무려 다섯 시간을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결국 화 낸 걸 사과하고 마무리를 지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궁금하다. 여자들은 정말 금성에서 온 사람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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