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지만, 한낮엔 매우 따스한 봄기운이 도는 요즘. 화창한 일요일 오후, 멋진 오페라 한 편을 감상하러 예술의전당으로 가는 발걸음은 매우 즐겁다.
공연은 언제든 기분을 좋게 만든다. 뮤지컬도 좋고 오페라도 멋지다. 뮤지컬은 화려하고 경쾌한 무대가 기대되지만, 오페라는 어쩐지 클래식하고 웅장해 조금은 무겁고 어렵다는 느낌을 받는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이전에도 몇 편 감상한 적이 있어 친근한 생각이 드는데 이번에 본 작품은 ‘가면무도회’다. 한국 오페라 70주년을 맞아 2018 제9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품으로 총 4회 중 마지막 날 공연을 관람했다.
‘가면무도회’는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3세 암살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어쩜 인생은 이렇게도 바른길로만 가지 못하고 애틋하게 얽히고설키는 건지, 애절한 내용에 가슴이 아팠다.
‘가면무도회’는 3막으로 인터미션을 포함해 170분 동안 펼쳐졌는데 배우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감동이 매우 컸다. 평소 노래를 좋아해 자주 부르지만 서너 곡만 해도 숨이 가쁘고 힘이 드는데, 긴 시간을 쉬지도 않고 열창하며 연기하는 성악가들을 보면 참으로 놀랍고 대단하다.
좌석이 무대 정면에서 일곱째 줄인 VIP석으로 배우들의 움직임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이탈리아어로 진행되어 자막을 봐야만 했는데 너무 높은 천장에 자막판이 있어 내용 보랴 무대 연기 보랴, 공연을 감상하기에 조금 힘들었다. 자막에 눈길이 자연스럽게 가도록 배려했던 다른 오리지널 공연과 비교해 너무 높은 곳에 설치한 자막판은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라 생각한다.
‘가면무도회’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에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 주제이다. 하필이면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보스턴의 총독 리카르도는 그가 가장 신임하는 비서관이자 친구인 레나토의 아내 아멜리아를 남몰래 사랑하게 되면서 고뇌에 빠진다.
리카르도는 백성을 현혹하고 있는 흑인 여자 점쟁이 올리카를 처형해야 한다는 판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시종 오스카의 변호를 확인하기 위해 어부로 변장하고 그녀의 집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아멜리아가 리카르도 자신을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음을 고백하는 말을 엿듣게 되고 자신 또한 가슴속에 간직했던 그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노래한다.
한편 점쟁이 올리카는 리카르도에게 지금부터 처음 악수하는 사람에게 살해당할 거라고 예언하고 그때 마침 뒤늦게 도착한 레나토가 총독을 음해하려는 음모로부터 무사함을 기뻐하는 악수를 청한다.
충성을 맹세한 레나토였기에 그에게 죽임을 당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레나토는 결국 총독과 아내와의 관계를 알게 되고 배신감에 복수를 결심한다.
리카르도는 레나토를 진급시켜 아멜리아와 함께 고향으로 떠나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알 리 없어 마지막 가면무도회에서 레나토는 예정대로 그를 찌르고 만다. 죽음의 앞에서 리카르도는 아멜리아의 결백을 증명하며 동시에 레나토를 용서한다고 말함으로써 백성에 대한 총독으로서의 마지막 사랑을 베풀며 숨을 거둔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연주되는 곡과 노래로 안타까움이 고조되며 마음이 아팠다. 왜 인생은 엇나간 사랑을 하게 해서 이런 비극을 초래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러한 극적인 사랑이 있어야 밋밋하지 않은 재미있는 인생 이야기도 전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두 주인공의 순수한 사랑에 마음 졸이며 감상한 비극 오페라 ‘가면무도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