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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커피 한 잔

기사입력 2018-02-26 15:04

노래 교실에 갈 때마다 앞자리의 K 회장은 늘 필자의 커피까지 한잔 사 온다. 백화점에서 파는 커피이므로 한잔에 5천 원 정도 한다. 혼자 마시기는 미안하니까 사는 김에 한 잔 더 사오는 모양이다. 양도 많아서 다 마시기에는 벅차지만, 성의를 봐서 다 마신다. 사실 저녁 시간에 마시는 커피는 자칫 불면증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사오지 말라고 하기도 어렵다.

노래 교실에 결석하는 날은 그래서 미리 K 회장에게 결석을 알린다. 한번은 깜빡 잊고 결석한다는 문자를 못 보냈다. K 회장은 커피 두 잔을 사 왔다가 혼자 다 마셨고 카페인 때문에 그날 밤 잠을 설쳤다고 했다.

사람들은 K회장이 커피 두 잔을 사오면 한잔은 자기가 마시고 다른 한잔은 노래 교실 강사가 우선일 것 같은데 필자에게 주는 이유를 물었다.

강사에게 커피를 주면 아부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회원 중 다른 여자에게 주면 둘의 관계를 곱지 않게 본다는 것이었다. 30명 정원에 남자라고는 우리 둘 뿐이니 필자가 가장 무난하다는 해명이었다.

자리 배치도 그랬다. K회장은 맨 앞자리에 앉고 필자는 그 다음 줄에 혼자 앉는다. 각각 2사람씩 앉는 자리이다 보니 옆자리에 누가 와서 앉으면 곧바로 한 마디 씩 한다. 뒷자리가 모두 차서 앉을 자리라고는 필자 옆 자리와 K 회장 옆자리 밖에 없는 경우에는 난감해 한다. 그럴 때는 노래 강사가 와서 앉으라고 할 때까지 에 서 있는다.

회식을 갈 때도 필자를 꼭 옆 자리에 앉혔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흑심이 있거나 여자들 관심 받으려고 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도 어느 한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면 다른 여자들 공격이 곧바로 들어 왔다. 그러나 필자가 같이 있으면 그냥 무난한 회식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꼭 필요한 들러리였다.

필자가 오디션을 통해 합창단 활동을 할 때도 그랬다. 여자 회원 39명에 남자라고는 필자 혼자였다. 총무가 간식으로 빵을 사오면 누군가가 간식을 먹으라며 빵과 주스를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여지없이 곱지 않은 시선과 둘 사이가 수상하다며 쫑코가 들어 왔다. 그러므로 모두가 보고 있으면서도 어찌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었다.

여자들 속에 둘러싸인 남자들은 처세를 조심해야 한다. 특별히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둘 사이를 갈라놓을 여러 가지 얘기를 만들어낸다. 나중에는 구설을 넘어 퇴출 대상이 된다.

나이가 대부분 환갑을 넘어 70을 향해 가는 나이인데도 이런 분위기는 고쳐지지 않는다. 문화화계에는 남자가 귀한 모양이다. 노래 교실에 남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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