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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내 편이 되어준 사람

기사입력 2018-02-05 11:12

[동년기자 페이지] 영원한 내 편!

청년 시절, 내 편이 되어준 처사(불교에서 성인 남자 신도를 이르는 말) 한 분을 잊을 수 없다. 그분을 생각하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그분과의 인연은 5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가 15세 때였다. 불일폭포 가까이에 있는 초가지붕의 한 암자에서 생면부지의 처사를 만났다. 행동과 말이 어눌한 60대 노인(지금은 한창 나이이지만 당시엔 노인이었다) 한 분이 건강을 위해 입산해 혼자 살고 있었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빈둥거리던 필자는 새싹이 막 돋아나오던 이른 봄에 쌍계사와 불일폭포 여행을 했다. 그리고 암자에서 그분을 우연히 만났다. 그분은 혼자 생활하기가 적적하고 잔심부름할 사람도 필요해서였는지 필자에게 방 하나를 선뜻 내주었다.

필자는 그곳에서 산나물도 캐고 온돌방에 군불도 때며 지냈다. 농업전문대학을 나와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그분은 덴마크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는데 유학 준비 중 건강에 이상이 생겨 직장까지 그만두고 건강을 위해 입산한 지식인이었다. 간혹 암자로 찾아오는 가족을 통해 그러한 신상을 조금 알게 되었을 뿐 이름도 나이도 몰랐다. 필자가 이름이라도 물어보려고 하면 이렇게 말했다.

“산에 올라올 때 모든 것을 땅에 묻어버렸네.”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웅변을 아주 잘했다. 암자에서도 발성 연습을 한답시고 아침마다 10여 분 거리에 있는 불일폭포를 오가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당연히 불일폭포 아래에서도 소리를 질렀다. 폭포소리를 한번 이겨보고 싶었던 것이다. 발성 연습이었다고 표현했지만 어찌 보면 진학도 못한 소년의 울부짖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산속이라 필자의 고함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그런데 근처에 스님이 수행하는 또 한 채의 암자가 있었다. 아침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필자의 고함이 수행에 방해가 되었는지 하루는 필자가 지내는 암자를 찾아와 처사에게 조용히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스님과 처사의 대화를 암자 뒤쪽에서 듣고 있던 필자는 불안해졌다. 스님이 가시고 나면 분명 꾸지람을 들을 게 뻔했다.

그런데 스님 말은 다 듣고 난 그분은 잘 타이르겠다는 대답 대신 오히려 스님에게 한마디 하셨다. 어떻게 수행을 하셨기에 고함소리가 들리시냐, 귀에 들리지 않을 때까지 더 정진하시라는 일침이었다. 비행기가 지나가면 시끄럽다고 못 지나가게 할 것이냐고 핵심을 찔러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실 이른 아침에 암자 근처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은 지적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필자에게 조심하라고 꾸지람할 줄 알았는데 그분은 오히려 더 열심히 연습하라며 격려를 해줬다.

처사의 말에 용기백배했다. 또 내 편이 되어주어 감사했고 든든했다. 그 후로도 필자는 발성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물론 스님을 생각해 조심하기는 했다. 그때 그분의 격려 덕에 필자는 오늘날 건강한 목소리로 서너 시간의 강의도 거뜬히 소화해낸다.

살면서 가끔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는다. 잘잘못을 떠나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든든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기심이 팽배해 있는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자신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외로워지고 절망한다. 그 시절 필자가 그렇게 소리라도 질러야 응어리가 풀리고 설움을 견뎌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사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 고인이 된 그분이 몹시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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