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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표 내 동생 연희

기사입력 2018-01-11 15:07

필자가 스무 살, 동생 연희가 열여덟 살이었던 어느 날, 동생 연희가 헐레벌떡 집을 향해 달려오더니 집 대문 앞에 있는 필자를 발견하곤 눈을 흘겼다. 죽는 줄 알았던 언니가 생생히 살아 있으니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지만 얄미웠던 것이다.

용인에 있는 방직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중노동을 하며 고생하는 연희에게 며칠 전 필자가 편지를 보냈던 것이 화근이었다. 언니로서 동생이 고마우면서도 안쓰러워 쓴 편지였다. 엄마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있었던 연희는 회사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시를 좋아하는 필자가 유치환 시인의 ‘행복’을 같이 적어서 보냈는데 내용 중에 "사랑하는 이여, 그럼 이만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는 구절에 놀라 일하다 말고 집으로 달려왔다는 것이다. 2년 전 자살 소동을 벌였던 언니가 또 죽는 줄 알았다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스무 살이 돼서야 고교생이 된 필자가 공부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던 시절이었다.

시를 잘 모르는 연희는 언니가 자기에게 이 세상 마지막 인사를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자살 소동을 벌였을 때 병석에 계신 아버지가 눈물을 뚝뚝 흘리시던 것만 기억하고 있었던 형제들이 그 사건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전혀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런데 천사표 동생 연희에게는 그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것을 그날 일로 인해 알게 되었다.

둘째로 태어난 필자와 셋째로 태어난 연희는 어려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해도, 배가 고파도 투정 한 번 부릴 줄 몰랐던 무던한 성격의 아이들이었다. 엄마는 우리가 울 줄도 모르고 그저 방바닥에서 뒹굴뒹굴하며 잘 놀았다 했다. 우리들에게까지 관심을 쏟기에는 엄마의 삶이 너무 고달팠고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엄마 것부터 닦아야지. 호호호."

수돗가를 지나던 동네 아줌마들이 한마디하면 남자 어른들도 참견을 했다.

"아니야, 아버지 것부터 닦아야 한다~"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필자가 부모님의 흰 고무신을 동네 한가운데 있던 공동 수돗가에서 닦을 때였다. 그때 우리 식구는 영등포에 살았고 필자는 시키지 않아도 눈치껏 엄마를 돕는 일을 했다.

"못 먹는 나물이 정월에 나온다더니…."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밥 준비 하시는 엄마를 도와드린다고 설치면 엄마가 웃으시며 늘 하던 말씀이었다. 엄마가 빨래해서 잘 말린 이불을 접으실 때면 맞은편에서 잡아드렸다. 엄마가 장난스럽게 휙 잡아 다니면 작은 몸집의 필자는 번번이 나동그라졌다. 엄마와 필자는 마주 보며 깔깔 웃는 시간이었다.

"엄마 조르지 말고 이거 먹어."

엄마가 우리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면 필자는 먹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동생들이 또 달라고 조를 때 주곤 했다. 그러다가 자아에 눈을 뜨게 되면서 필자는 서서히 이기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천사표 연희는 착한 심성을 그대로 이어갔다.

"언니 먹어."

"아냐, 괜찮아."

새벽에 일을 가야 하는 연희에게 엄마는 계란 프라이 두 개를 해서 줬다. 그 시간에는 밥맛이 없으니 그거라도 먹고 가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때 잠이 깬 필자가 쳐다보고 있으면 연희는 늘 접시를 내밀었다. 그러나 그걸 필자 입으로 넣겠는가. 힘든 공장 일을 하러 가는 연희의 허기를 달래줄 영혼과 같은 음식인데…. 아침의 계란 프라이는 언니로서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었다.

‘내가 연희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고 있구나!‘

어느 여름날 야근을 하고 와서 낮에 곤하게 잠을 자고 있는, 비쩍 마른 연희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더운 날 모기장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혼수상태로 잠을 자고 있는 동생이 너무 불쌍해서 가슴이 아팠다. 자는 도중에 연희는 가끔 얼굴을 찡그렸다. 꿈속에서도 힘들었던 것일까?

"한 푼만 도와주세요."

"이걸 어떡하지!“

그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20대 중반의 연희는 버스를 타다가 동냥하는 걸인을 봤다.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정 많은 연희는 그때 가지고 있는 돈이 교통비로 쓸 1000원 한 장뿐이었다. 공장에서 힘들게 번 돈을 봉투째 고스란히 엄마에게 갖다드렸던 봉투도 뜯어보지 않았던 연희는 돈을 허투로 쓰는 걸 불효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다 드린 후 조금씩 용돈을 받아썼기에 늘 여유가 없었다. 농대에 근무하던 필자의 한 달 월급이 5만 원 하던 시절이었다.

버스비로 낼 돈이라서 잠시 갈등하던 연희는 그 돈을 걸인에게 주었다. 그러자 걸인은 황급히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출입문 쪽으로 갔다. 아마도 ‘이게 웬 횡재지?’ 했을 게 뻔하다. 그러나 아직 버스비도 내지 않은 연희는 당혹스러웠다. 얼른 달려가 걸인에게 거스름돈을 달라고 했고 무사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1000원이 큰돈이었기에 걸인이 거스름돈을 줄 줄 알았다는 연희. 이 세상에 걸인한테 거스름돈을 받은 사람은 동생 연희밖에 없을 것이다. 착한 우리 동생 연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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