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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송화는 피고 지는데…

기사입력 2018-01-08 15:43

[동년기자 페이지] 벗에 대하여…

몇 년 전이었더라. 베란다 창밖 난간에 매달린 선반에 기다란 화분이 두 개 있었다. 봄이면 베고니아처럼 자잘한 꽃들을 몇 포기씩 사다가 나란히 심었다. 아주 예쁘게 잘 자라 봄에서 가을까지 꽃을 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가끔 고추나 체리토마토 모종도 몇 포기 심어봤는데 역시 잘 자랐다. 빨간 토마토가 앙증맞게 방울방울 달리고 크진 않았지만 고추도 몇 개씩 달려 푸른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물과 햇살만으로도 잘 자라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심지도 않은 채송화 싹이 나오더니 얼마 안 돼 꽃들이 정신없이 피어났다. 우리 가족은 환호했고 그 신기한 모습을 다투어 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어떤 인연으로 우리 집까지 날아온 씨앗일까. 여름부터 가을까지 꽃은 피고 지면서 눈을 호강시켜줬다. 그리고 해마다 포기가 점점 늘어나 화분에 가득 찼다. 채송화가 그렇게 강한 번식력과 질긴 생명력을 지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정은수. 내 짝꿍 은수네 집은 채송화가 아주 많이 피어 있었다. 마당 한쪽 꽃밭이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채송화로 덮여 있었다. 봄이었는지 여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비가 내린 다음 날이면 은수 엄마는 채송화 캔 것을 양동이에 한가득 담아 학교에 가져오셨다. 그리고 교실 앞 화단에 조용히 앉아 촉촉해진 땅을 호미로 파 채송화를 심으셨다. 당연히 교장실 앞 화단에도 정성껏 심곤 하셨다. 선생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채송화보다도 더 예뻤던 은수 엄마의 마음을 필자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은수네 집에 놀러갔을 때 필자에게도 뿌리째 캐어 한 소쿠리 담아주셔서 아침에 세수하려고 우물가에 앉으면 활짝 핀 채송화랑 눈이 마주쳤다. 우리 집 꽃밭 채송화도 어느새 꽃밭 둘레를 가득 채웠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은수와 소식이 끊겼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이사를 가버렸는데 그 뒤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더 지나 필자는 어느덧 여고생이 되었다. 문득문득 은수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은수를 보게 됐다.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을 보내면서 어쭙잖게 규율부 활동을 했는데 등굣길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명분하에 교문 앞을 지키고 서 있을 때 놀랍게도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 은수를 보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흘렀는데도 예전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다시 봐도 분명 은수였다. 너무 반가워서 “은수? 은수지?” 했더니 나를 알아보고 조금 웃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필자만큼 반가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그렇게 몇 번 더 마주쳤는데도 역시 반기는 모습은 아니었다. 필자는 슬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은수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1년을 쉬었다가 다시 진학을 해서 필자보다 학년이 하나 아래였다. 선후배를 유난히 따지던 시절이라 그랬을까. 은수는 필자를 보면 오히려 슬그머니 피하는 것 같아 너무 서운했다. 그래도 필자가 씩씩하게 다가갔다면 좋았을 텐데 바보처럼 씩 웃거나 멀리서 바라보는 게 고작이었다. 게다가 필자가 먼저 학교를 졸업하면서 단짝 은수와는 그렇게 또 헤어지고 말았다.

“채송화가 무척 많이 피었어” 하면서 손을 잡아끌던 은수의 모습을 떠올리면 바보 같았던 필자 모습이 오버랩된다. 우리는 왜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걸까. 꽃이 필 때마다 서로를 추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위한 통과의례일까.

오늘은 필자의 마음속으로 싸아~ 하니 박하향 같은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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