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기자 페이지] 벗에 대하여…
동물이 어미를 기억하는 방법은 냄새일 것 같다. 잊을 수 없는 냄새. 가장 원초적인 냄새. 엄마의 냄새는 향기와 그리움, 그리고 평화로 일치되곤 한다. 가장 안전하고 따스하며 부드러운 느낌. 친구를 그렇게 기억해낸다면 과장으로 들릴까.
어렸을 때는 예쁜 친구가 좋았다. 좋은 냄새가 나고 예쁜 옷을 입은 아이가 좋은 친구라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말이 잘 통하고 재미있는 친구가 끌렸다. 종일 같이 놀고도 헤어지기 싫어 서로의 집을 오가던 친구가 좋았다. 대학 시절에는 철학과 주관이 분명한 친구가 멋있어 보였다. 뭔가 배울 수 있는 친구.
사회에서는 그런 친구의 틀이 다 깨어졌다. 예쁜 친구도 아니고, 옷을 잘 입는 친구도 아닌, 마음이 넓고 깊은 친구가 최고였다. 온전한 한 인격으로 상대를 바라봐주고 이해해주는 친구에게서 향기가 났다.
필자 옆에도 그런 친구가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이익도 따지지 않고 신의가 있어 오랫동안 함께했다.
바로 초등학교 동창이다. 그녀의 집은 부자였다. 마음도 넉넉했다. 언제나 조용히 필자 옆에 있어줬고 배려가 많은 친구였다. 그래도 공부할 때는 경쟁했다. 점수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고 상대를 이기려고도 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런 마음은 차차 무뎌졌다.
어른이 되어서는 요리와 꽃꽂이를 즐기고 수를 놓거나 칠보를 했다. 작품을 만들면 서로에게 선물을 하곤 했다. 귀한 요리를 차려놓고 맛있게 먹으면 홀린 듯 쳐다보는 친구. 아주 여성스러운 그녀다.
필자가 사업을 시작했을 때, 주문을 받았지만 자금을 구할 수 없어 동분서주했던 날이 있다. 너무 급한 상황이라 망설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상황 설명을 하고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딱 한마디만 했다.
“난 네 이름 하나면 돼, 설명 필요 없어.”
그녀는 바로 통장으로 입금을 해줬다. 먹먹한 마음에 고맙다는 말도 겨우 꺼냈다. 이후 무사히 물건 대금을 받고 나서 친구를 찾아갔다. 고마운 마음에 준비해간 선물도 주고 이자와 원금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그러자 친구는 선물은 고맙게 잘 받겠지만 이자는 절대로 받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필자는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집을 나왔다.
그런데 이튿날, 통장에 필자가 두고 온 이자가 고스란히 입금되어 있었다. 그녀의 높은 품격이 전해져왔다. 아직도 그때를 잊을 수 없다. 아무 조건 없이 필자를 도와줬던 그녀의 마음은 어려울 때마다 필자를 견디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는 얼굴도 예쁘지만 마음은 더 예쁘고 따스함과 평온함이 있다. 매무새도 세련되고 기품도 있다. 그녀에게선 엄마의 향기가 난다. 만날 때마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냄새를 맡게 된다.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둥지 같은 친구다. 모든 면에서 합격점을 받은 친구다. 본받고 싶은 인격이다. 밥 짓는 저녁 무렵,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냄새 같은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