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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일본적인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기사입력 2017-11-08 10:04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영화 장면(박미령 동년기자)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영화 장면(박미령 동년기자)
일본문화를 논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이 아닐까 한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베네딕트는 한 번도 일본을 간 적이 없었다고 한다. 전후 일본을 다스리게 된 미국 정부의 의뢰로 다양한 책과 문서를 분석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책이 일본을 이해하는 데 고전이 된 것은 일본 문화의 핵심을 찌른 제목의 상징성 때문이다.

국화의 상징이 다양하게 해석되고는 있지만, 대체로 심미적인 아름다움에의 집착을 상징한다면, 칼은 그 이면에 감추어진 잔인한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오랜 바쿠후 지배의 결과이기도 하겠으나 사무라이 문화라든가 할복의 전통 등이 칼을 일본의 대표적 이미지로 자리 잡게 했다. 그런데 이런 험악한 죽음의 이미지가 심미적인 태도와 만나면서 기이하게도 죽음은 미학으로 표현된다.

그래서인지 일본 문학 속에서 죽음은 아픔이나 슬픔을 내포하지 않는다. 그저 삶의 한 유형으로 담백하게 마주하며 때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것은 죽음의 배경으로 그들이 국화로 삼는 사쿠라(벚꽃)를 자주 등장시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말 ‘사쿠라’는 고대 우리말 ‘사그라지다’에서 유래되었듯이 화사하게 피었다가 어느 한순간 쏟아지듯 져 버리는 담백한 죽음에서 일본의 기질과 통한다는 것이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이런 일본의 문화적 특징을 고루 담고 있어 흥미로웠다. 영화 줄거리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이면서 어린 시절의 성장 스토리로 볼 수 있는데 어른들의 눈으로 볼 때는 몹시 심심하고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런 스토리가 원작이 250만 부나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 속에는 분명 일본인을 열광케 하는 일본문화의 코드가 담겼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모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된 시가(오구리 슌)가 폐관이 결정된 도서관을 정리하면서 12년 전 첫사랑을 추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12년 전 우연히 지금은 세상에 없는 동급생 사쿠라(하마베 미나미)의 공병문고를 주운 내(키타무라 타쿠미)가 그녀와 비밀을 공유하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매우 익숙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러브레터>(1995)부터 여러 영화에 반복된 소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만의 매력도 없지 않다. 그것은 바로 서사 전개의 힘이다. 키워드는 추억이며 줄곧 나의 시선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과거 영화와 구별된다. 이런 서사 방식이 단순한 스토리이면서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장치로 기능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각기 자신의 추억과 비교하며 공감하게 된다.

영화 속에는 죽음을 앞둔 이들에 흔한 소재인 버킷리스트라든가 둘만이 공유한 비밀 등 아기자기한 에피소드가 등장하지만, 역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이름다운 미장센이다. 포스터에도 등장하듯이 화사한 벚꽃이 압권이고 가는 곳마다 화사한 풍광이 일품이다. 거기엔 죽음의 음산함이 깃들 틈새가 없다. 게다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비교적 무리 없이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 제목이 이상하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용을 보면 비슷한 부위를 먹으면 약효가 있다는 우리에게도 있는 전통적인 믿음을 표현한 것으로 병을 앓는 상대에 대한 간절한 소원의 말이다. 나중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말로 승화되지만, 왠지 듣기가 거북하다. 잔혹한 표현을 즐기는 지극히 일본다운 표현이다. 마지막 반전은 헛웃음이 나오는 불필요한 기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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