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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랑

기사입력 2017-11-03 14:43

이십 년 전부터 기부하는 단체가 세 곳이 있다. 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은퇴 후 씀씀이가 팍팍해지고 있어 기부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적이 있다. 마침 오늘 이웃들에게 미용 기술로 봉사하는 여성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지금이라도 뭔가 배워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낡은 바이올린을 들고 템즈강 가에서 연주하는 노인이 있었다. 아무도 그 노인의 연주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앞에 놓인 모자에는 돈이 모이지 않았다. 그의 행색은 남루했고 바싹 바른 몸은 추위와 굶주림에 견디기 힘들어 보였다.

그때 그의 옆을 지나던 한 외국인 젊은이가 다가가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침 산책 중이라 돈은 없고 바이올린을 빌려주면 대신 연주를 하겠다고 했다. 노인은 곱은 손에서 바이올린을 그 청년에게 넘겨주었다. 그가 연주를 시작했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지나갔던 사람이 되돌아오고 주변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숨죽이며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군중들이 알아보고 소리쳤다.

“파가니니다.”

니콜로 파가니니는 템즈강을 산책 중 가난하고 어려워 보이는 노인을 돕고자 그가 대극장에서 연주하려던 곡을 강가에서 먼저 연주한 것이었다.

군중들은 가난한 악사를 위한 그의 선행에 환호하며 노인의 모자에 돈을 던져 넣었다.

생각만 해도 멋진 장면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하다.

나치 치하에서 게토에서 죽어가던 유대인 아이들을 도와 2,500명이나 살린 간호원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때로는 관 속에 넣어 또는 시체 사이에 끼워, 음식운반 차량에 숨겨 그 많은 아이를 살렸다. 그때마다 전쟁이 끝나면 부모를 찾을 수 있게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 병 속에 넣어 숨겨두었다고 한다.

나치에게 발각되어 심한 고문을 당했지만 입을 열지 않아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다. 사형을 기다리던 중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그 후 숨어서 살았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유대인 단체에 그 병 속에 적힌 이름들을 보냈고 아이들은 부모를 찾을 수 있었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대되었지만, 상을 받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섭섭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 아니요. 섭섭하지 않아요. 도망쳤던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 그의 아이들과 같이 나를 찾아오고 손자들까지 데리고 와서 인사합니다.”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답했다.

“아버지 때문이에요. 아버지는 늘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모든 사람이 위험과 공포를 피하고 싶어 한다. 그것에 맞서려면 그보다 더한 가치를 느껴야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 나보다 더 똑똑하게 잘살게 키우고 싶어 한다. 위험을 부모가 제거하고 힘든 일을 대신 해주며 아이들을 행복하게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며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웃이 생겨난다. 그보다는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교육하는 것이 더 나은 사람을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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