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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분노

기사입력 2017-08-23 10:51

어느덧 이순(耳順)의 나이를 지났다. 공자는 육십의 나이를 이순이라 불렀다.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생을 그 나이만큼 살면 어떤 상황이든 대부분 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리라. 그런데 이순의 나이에도 아직도 화를 내는 일이 있으니 문제다. 물론 예전보다는 화를 적게 낸다. 지나고 보면 화를 낼 일이 아닌데 화를 내서 후회하는 일이 빈번하게 있다 보니 다시 한 번 상황을 검토하는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차원과 공공적 차원의 분노를 구분해본다. 개인적 차원의 분노는 주로 인간관계에서 발생한다. 인간관계를 할 때 상대가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거나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거나 약속을 위반하면 화가 난다. 자신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한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수준보다 형편없게 일을 처리하거나 노력한 만큼 일의 성과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다. 그러나 노력하면 개인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화는 대부분 피할 수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나 자신도 잘 모르는데 다른 사람을 100%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렇게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생각해보면 화를 줄일 수 있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모두들 이별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아웅다웅하며 살다가 그 사람이 죽고 나면 후회를 한다. 이 세상에 여행 온 나그네처럼 좋은 추억만 남기고 가고 싶다.

그렇다고 화를 안 내고 살 수는 없다. 또 마땅히 내야 할 분노도 있다. 공익적 차원에서 내는 분노는 거룩하다. 필자가 애송하는 시 중에 변영로의 시 ‘논개’가 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로 시작되는 시다. 시인은 우리나라를 짓밟은 왜에 대한 분노를 거룩한 분노라 표현했다. 거룩한 분노는 의분이고 공분이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에는 당연히 화를 내야 한다. 인간을 노예로 팔거나 인간성을 파괴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볼 때는 참기 힘들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나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익을 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화가 난다. 건강하고 거룩한 분노다.

개인적 차원의 분노는 수양과 수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적 차원의 분노는 건강한 사회가 형성되어야 없어질 수 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거룩한 분노는 더욱더 필요하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의 분노는 줄이되 거룩한 분노는 잃지 말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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