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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산타야

기사입력 2017-07-26 09:12

“산타가 어디 있냐? 넌 아직도 그걸 믿냐?”

“….”

친구들과 거실에서 놀던 아이가 못내 진지한 얼굴로 산타의 진위를 묻는다. 순간 당황한 필자는 산타는 믿는 사람에게만 있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11월 중순쯤 딸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레고로 점 찍어놓고 열심히 ‘착한 어린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날마다 기도를 하고 공들여서 산타를 기다리던 와중이었는데 그런 사단이 난 것이다. 산타의 실체를 이미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딸아이 친구들을 보면서 내심 ‘우리 아이만 바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필자의 생각을 말하니 화살처럼 달려가 2층 침대 위에서 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더니 “진주야! 아빠가 산타야! 산타는 아빠야! 알았지?” 했다. 안 그래도 딸바보인 남편은 한잔 걸친 취기에 힘입어 앞뒤 전후 상황 가리지 않고 곧바로 돌진해 쉽게 누설해서는 안 될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다. 미처 잠이 덜 깬 딸아이는 눈을 비비며 아빠를 쳐다보다가 훌쩍이더니 급기야는 목놓아 울었다. 그러고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제는 누구도 믿지 않겠다며 통곡을 했다. 그로부터 몇 달은 ‘산’ 자만 나와도 눈물을 흘렸다. 딸에게는 경악과 배신을 동시에 경험한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들으니 딸아이는 그날 이후부터 세상의 모든 것들에 물음표를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일에서부터 크고 작은 뉴스, 역사적 사건, 진리조차도 의심하고 확인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단다. 나름 필터링이 생긴 것이리라. 충격을 받지 않도록 천천히 조심조심 알리고 싶었지만, 주책맞은 아버지 때문에 생긴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한동안 가족들에게 회자되었다.

때로는 진실이 아플 때가 있다.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불안감이 먼저 작동해서 일을 그르칠 때가 있다. 바로 딸아이와 같은 경우다. 그해 크리스마스는 어색하고 서먹했다. 그날 이후 아빠 산타는 슬그머니 퇴장하고 언니 산타가 등장했다. 어린 사촌 동생을 위해 딸아이가 ‘언니 산타’를 자처했다. 밤새 선물을 사고 파티를 준비하면서 누구나 산타를 기다린다는 것과 세상에는 ‘주고파 산타’와 ‘받고파 산타’가 있고, 동시에 1인 2역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만큼 아이는 자랐다. 그 후 언니 산타에서 조카 산타, 손녀 산타, 이제는 신부 산타로 성장했고, 그날의 해프닝은 이런 교훈을 남겼다

‘남이 깨면 후라이, 내가 깨면 병아리!’

딸아이는 머잖아 가질 아가를 위해 예비 부모로서의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다. 엄마 산타를 준비하는 딸아이를 위해 건강과 행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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