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철훈의 사진 이야기]
몽골 하늘은 끝 간 데 없이 둥글다. 난 몽골에 와서야 하늘이 둥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하늘이겠거니 하며 지나쳤다가 고개를 대강 한 바퀴 돌려봤다. 그런데 하늘은 그렇게 성의 없이 볼 대상이 아니었기에, 맘먹고 목에 힘을 줘 360도를 확인해보고 어지럼증에 초원 한복판에 등을 대고 누웠다. 이렇게 편히 하늘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펼쳐진 하늘에 구름! 아무리 봐도 멋지다. 보고 또 봐도 다시 보고 싶다. 이와 다른 구름에 대한 기억이 내겐 있다.
오래전 구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살았기 때문이다. 처음 그곳에 가는 날 후배는 배웅을 나왔다가 굳이 버스를 함께 탔다. 마장동에서 탄 시외버스는 일동, 이동을 거쳐 화천, 화지리를 지나 다목리 종점에 이르렀고, 버스에서 내려 후배랑 헤어져 대성산을 오를 때까지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그렇게 구름 속에서 비를 맞으며 한 시간 넘게 걷다보니 안개와 구름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구름에서 안개로 다시 안개에서 구름으로 자리 바뀜을 몇 차례 혼돈하다 보면 언뜻언뜻 푸른 하늘이 스친다. 이내 그 하늘이 눈에 꽉 차며, 내 턱과 코 아래에서 흩어지며 휘날리는 구름이 보인다. 차츰 조금 더 멀리 멀리 시야가 트이고, 운해라는 말이 꼭 어울리는 구름바다를 뚫고 솟아난 봉우리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여기저기 보이는 거기부턴 다른 세상이다. 하늘빛이 다르고 해가 다르다. 마시는 공기의 밀도도 다르다. 내 발이 딛고 있는 능선만이 가늘게 이어진다. 저긴 아직 비가 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뽀송뽀송한 날숨과 들숨이 다르게 거긴 지금 내 옷처럼 눅눅할 것이다.
며칠째 구름과 하늘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 바람의 변화와 물의 균형을 보여줬다. 그런 구름과 하늘의 조화에 내 생각과 기준이 흔들린다. 그리고 구름이 바람과 물임을 알게 되었다. 자기의 형태에 머무르지 않는 물과 바람의 조화가 새삼스럽다. 그런 구름에 비교해 표현할 말을 지금도 못 찾겠다. 그러던 날 아침, 바람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오성산이 보이는 북쪽에 가득한 구름이 내가 앉아 있는 능선을 경계로 남쪽 계곡을 타고 수십여 길이나 쏟아진다. 흩어져 내리던 구름이 주먹만 하게 손바닥만큼 저 아래 모이는 게 보인다. 소리까지 내며 쏟아지는 구름의 위세가 차츰 커진다. 구름이 만들어내는 폭포의 줄기도 이내 굵어진다. 손바닥만 하던 구름이 꾸역꾸역 모여 두 손을 가리고 몸을 가리고 마을을 가리고, 구름으로 차는 데 거의 반나절이 걸렸는데도 난 시장기를 느끼지 않았다.
세상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다니는 일이 직업인 사진가는 소문난 곳을 많이 방문하게 된다. 그렇게 특별한 사람과 문화가 있는 풍광을 사진기에 담기 위해 다닌 행로를 따라가 보니 세계 전도가 그려진 지 오래다. 그리고 이제 하늘이 보인다. 목적을 위해 여기저기 바쁘게 다닐 때도 수시로 하늘에 감동했지만 스쳐 지나가는 배경일 뿐이었다. 이제는 하늘과 구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 구름이 무엇을 닮아서 신기해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그러나 이젠 무엇을 닮지 않아도 그냥 구름이 좋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어떤 극적인 색을 띠지 않아도 구름만으로 충분히 좋다.
그래서 최순우 선생님의 말이 번득 이해가 되었다.
모든 청자는 백자가 되고 싶은 꿈을 꾸었다.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