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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해진 우리 동네 골목길.

기사입력 2017-06-19 17:00

▲산뜻한 담장의 그림(박혜경 동년기자)
▲산뜻한 담장의 그림(박혜경 동년기자)
골목길은 어쩐지 큰길보다는 뭔가 비밀스럽고 은밀한 느낌이 있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하던 정다움도 느껴지고 꽃다운 젊은 날 좋아하는 사람과 거닐며 가슴 떨렸던 수줍

은 기억도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필자는 10살까지 대전의 대흥동 주택가에서 살았다.

골목 안쪽에 우리 집이 있었는데 그 골목은 다른 곳보다 무척이나 좁았다.

어릴 땐 몰랐지만, 어른이 되어 그리움에 한 번 찾아가 보니 뚱뚱한 사람은 통과하기 좀 힘

들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그래도 그 골목은 좁아서인지 더욱 골목 안 우리 친구들의 천국과 같은 놀이터였다.

▲우중충하던 골목 담장이 예쁜 파스텔 톤으로 바뀌었다(박혜경 동년기자)
▲우중충하던 골목 담장이 예쁜 파스텔 톤으로 바뀌었다(박혜경 동년기자)

지금과는 달리 어릴 때의 필자는 매우 개구쟁이였던 모양이다.

노래도 잘했다는데 아이들의 동요가 아닌 당시 유행하던 강화도령이나 제목도 모르지만 ‘반

짝이는 불빛 아래 소곤소곤 소곤대던 그으 나알밤~’이란 가요를 구성지게 잘도 불러 재껴

서 동네 어른들은 필자만 보면 “노래 한 자락 해봐라.”고 하셨다.

그 골목에서 즐거웠던 일은 동네 아이들과 연극을 해보자고 작당했던 일이다.

무대는 좁은 골목 안 용호네 대문 위쪽과 반대편 전봇대에 줄을 매달고 담요를 걸쳐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무대를 만든 것처럼 즐거웠고 춘향전을 한다며 담요를 들치고 나와

연기를 펼치며 깔깔대었다.

정말 그땐 어른들도 볼거리가 없었던지 철부지 동네 꼬마들이 하는 연극에 신문지나 가마니

를 깔고 앉아 귀엽다며 칭찬하고 웃어주셨다.

그렇게 골목길은 필자의 어린 시절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한 곳이다.

작년에 우리 동네 뒤쪽으로 산책로가 새로 조성되었다.

2km의 길이로 펼쳐진 산책길은 중간 한 부분 100여 미터 정도 골목길을 통하게 되어있다.

처음 그 골목을 지나며 필자는 깜짝 놀랐고 낯설지 않은 느낌에 내심 반갑기도 했다.

좁다란 골목이 어린 날 개구쟁이 모여 놀던 그 골목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었다.

약간은 후줄그레한 지저분한 회색 담벼락이 이어졌는데 어느 날 지나다 보니 담장 치장이

한창이었다.

아마 개인이 하는 건 아니고 지자체에서 골목단장사업을 하는 것 같다.

연말이 가까워져 오면 할당받은 예산을 없애기 위해 잘 깔려있는 멀쩡한 보도블록도 교체하

는 등 무리하게 예산 집행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골목을 깔끔하게 단장하는 데 쓰인다면 칭찬해 줘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산책 때문이든 그저 통과하는 것이든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산뜻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어서이다.

각 집마다 색상을 달리해서 칠하는 페인트의 색이 너무 고와 어느 집 담장이 더 예쁜지 감상해 보는 것도 즐거운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파스텔 톤으로 인디언핑크, 연하늘색, 연보라 연노랑 등 은은한 색의 담장이 뽐내듯 이어졌

고 골목 끝 부분의 좀 큰 담장에는 사계절을 표현한 벽화가 그려졌다.

이제는 골목을 지나며 우중충한 모습을 보지 않게 되어 기분이 좋다.

봄을 상징하는 꽃잎 담장도 있고 가을 단풍을 그려놓은 담장도 있다.

동심의 세계로 이끌 것만 같은 겨울 눈 내리는 공간에 다정히 서 있는 눈사람 한 쌍도 정겨

운 풍경이다.

누구의 발상으로 수십 년간 우중충했던 골목을 이렇게 예쁘게 바꾸게 되었을까?

골목 안 주민들도 좋겠지만 화사한 골목길을 지나는 나그네들도 산뜻한 기분일 것 같다.

오늘도 골목을 지나며 어떤 담장이 더 예쁜지 기분 좋은 감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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