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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하니 젊으신 분 같은데…

기사입력 2017-05-29 16:02

아내가 어느새 일어나 부엌에서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어렴풋 잠이 깼다. 인천공항 근처에 원룸을 얻어 주 중에는 그 곳에서 생활하다가 주말에만 서울로 올라오는 주말부부 생활도 벌써 9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은퇴 후의 삶이 이렇게 바뀔 줄은 나도 잘 몰랐다.

어제는 갑자기 서울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겨 회사 통근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최근 며칠사이 목감기로 인해 깊은 잠을 못 이루고 설치다 보니 늘 피로감이 따라다녔는데, 모처럼 집에 와서 편해진 마음으로 갚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아내는 이것저것 몸에 좋다는 식재료를 사용해서 정성껏 준비한 아침식사를 뚝딱 차려주었으나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영 입맛이 돌지를 않아 젓가락만 께지락 거리다가 아침상을 물렸다.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니 오월의 싱그러운 바람이 옷깃에 스민다. 상쾌했다. 지하철을 타고 잠실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타던 중에 한 젊은이와 본의 아니게 입씨름을 하게 되었다. 한 택배회사의 직원인 듯 한 그 친구는 자신의 키보다 높은 4층짜리 카트를 밀고 요란하게 다가오더니 엘리베이터 안으로 급하게 카트를 쑥 들이밀면서 미리 타고 있던 나를 아슬아슬하게 밀치고 들어섰다. “쯧쯧, 조심할 것이지…”은근이 불쾌한 감정이 울컥 올라왔지만 참고 있던 중에 지상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카트를 우악스럽게 내리는 과정에서 나의 팔을 슬쩍 치고 나갔다.

순간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나갔다. “아니 조심을 좀 해서 내려야 하는 것 아니에요?” 정중하게 항의를 했지만 나도 모르게 말꼬리가 올라갔다. 그 친구는 엘리베이터에서 나가다 말고 선채로 나를 한참을 쳐다보더니 “그래서요?” 하고 시비조로 나온다. 그 친구의 말투에 멈칫하다가 “아니, 보아하니 젊으신 분 같은데,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카트를 이동할 때에는 주위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또 볼멘소리가 나갔다.”그래서 어쩌겠다는 건데요. “눈을 아래위로 부라리면서 아예 시비조로 나가는 젊은이를 보면서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더 이상 말을 섞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그곳을 빠져나왔다.

참으로 세상 말세로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와 스트레스로 돌아온다. 온갖 잡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타인을 배려하기는커녕 아래 위도 무시하고 나대는 이 젊은이의 한심스러운 작태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할 아킬레스건 같은 것은 아닐까? 이런 막돼먹은 현상이 비단 그 젊은이 한사람에게만 국한된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전체에 팽배해진 개인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적 사고에 함몰된 현실적인 문제는 아닐까? 우려 아닌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상쾌했던 기분은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회사 통근버스에 올랐다.

통근버스는 새벽공기를 가르며 쏜살같이 잠실대교를 넘고 있었다. 잠실대교 밑의 한강물이 아침햇살에 잔잔하게 출렁거린다. 서울의 거리는 어느새 출근하는 차량들로 꽉 채워졌다. 하루의 출근전쟁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창밖으로 흐르는 5월의 푸르름이 눈을 호강시킨다. 잠시전의 불쾌하기 짝이 없던 언쟁이 잔상으로 떠올랐지만 상큼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모두 날려 보낸다.

그래도 이 멋진 세상이 날마다 나를 환영해 주는데,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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